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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09 인류학개론 현지조사
  2. 2011.07.08 사회학개론 에세이
  3. 2011.07.06 아늑하다
  4. 2011.07.06 오랜만이다
  5. 2011.07.06 건강
  6. 2011.07.06 무대 풍경
서문

 고등학교,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 있을 만한 문화적 기억이다. 그 곳에 있었을 때, 우리들은 모두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의 마지막 시절, 회광반조와도 같은 반짝임으로 고등학교의 3년을 보냈다. 1318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사회학자들은 보통 이 시기를 십대teenage 라 말한다. 중고등학교의 6년간이 정말 ‘십대다운 십대’ 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지금, 그 십대의 시절을 다시 뒤돌아보며, 지금 그 시기를 걷는 이들과, 그 시기를 함께 걸으며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어른들과, 그 시기를 추억하는 이들과 함께, 그 시절을 다시 한 번 걸어 보기로 했다. 그런 생각에서 만들어 낸 인터뷰 대상자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동기동창이자 오타쿠 집단 내에 있던 친구 A. 
2. 오타쿠 집단과 관계없던 친구 B. 
3. 현재 고등학교 재학 중인 후배 C. 
4. 현재 고등학교 교사인 D. 
 일단 필자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하려고 한다. 필자는 배재중 배재고를 나왔다. 즉, 얼마 남지 않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기는, 남중-남고 라인이다. 여담이지만, 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우리 학교 건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매점’ 건물이다. 어쨌든, 나와 함께 그 남중-남고를 보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다.
 십대의 시기는 또래 집단을 만드는 시기이다. 절대로 자연스러운 또래 집단만으로는 정말 제대로 논 사람이 아니다. 필자는 그것을 후회하며, 그렇게 ‘놀았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로써 특정 담론에 대한 지식을 얻기로 했다.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집단은, 어느 반에나 있다는 ‘오타쿠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반에 몇 명씩 있고, 저들끼리 몰려다니며, 알 수 없는 말로 떠들며, 전혀 삶과는 관계없는 것에 열광하는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이것을 주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필자도 이 집단에 발을 어느 정도는 걸치고 있었고, 이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주된 이야기는 ‘과연, 또래 집단으로서의, 오타쿠란 무엇인가’ 이다. 어떤 특정한 가설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단순히 오타쿠 문화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만의 특정한 사고방식과 문화 구조, 용어 등에 대해서 조사하기로 하였다. 

1. 오타쿠 안에서 보는 오타쿠-너네, 대체 정체가 뭐냐?

 그림을 첨부한다. 이 그림을 보고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텔레비전 색 테스트인가?” 또는 “바코드 같은데?”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마니아 혹은 오타쿠라면 할 수 있는 외침은 “하루히!” 일 것이다. 혹은 “스즈미야!” 라고 할 수도 있다. 뭐, 똑같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그린 색들을 적당히 조합하여 만든 그림이다. 참고로, 그림 밑에는 “이 사진을 이해하는 것은 당신이 오타쿠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고 적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필자는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친구들은 이 그림을 알아보며 스스로 좌절했다(“내가 오타쿠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오타쿠라니!”). 
 가장 먼저, 오타쿠란 무엇인가? 오타쿠란 용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sf 동호회가 등장하던 시기의, 초기의 동호회 문화였다. 오타쿠란 お宅 를 한글로 읽은 발음이다. ‘오 お’는 경어 자격의 접미사이며 ‘타쿠 宅’란 ‘댁’이란 뜻이다. 보통 우리도 쓰는 말로서, “댁은 어떠신가요?” 할 때의 그 ‘댁’ 이라는 말이다. ‘당신’이라는 말은 ‘아나타あなた’ 이지만, 그것을 극존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오타쿠お宅 라는 말이다. 마니아들끼리 만났을 때 서로를 지칭하는 말로써 오타쿠라는 말을 사용하였던 것이 고유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오타쿠들의 세대를 나누어 1~3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1세대 오타쿠란, 오타쿠란 말이 생기기도 전부터 마니아였던 자들로서, 현재는 2, 3세대를 주된 소비자로 하여 ‘먹고 사는 오타쿠’를 칭할 수 있다. 현재의 반다이, 가이낙스 등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참고로, 미야자키 하야오도 오타쿠라 볼 수 있다. 1세대 오타쿠들의 명언이 여기서는 통할 수 있었다. “마니아가 세상으로 만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오타쿠는 만화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다.” 라는 명언이 통하는 유일한 세대이다.
 2세대는 후발 오타쿠라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등의 산업에서 일을 하며 먹고 살기는 하지만, 거장은 되지 못한 이들을 칭하여 2세대 오타쿠라 한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문제가 되며, 한국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3세대 오타쿠이다. 이들까지 오면 더 이상 お宅라는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으며, オタク라고 가타카나로 적는다. 즉, 고유명사화 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으며, 신기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경멸하기까지 하는 오타쿠들은 주로 이들을 지칭한다. 현재 일본에서도 이것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타쿠들 스스로는 오타쿠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들을 오타쿠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그 오타쿠라는 어감에 담긴 필연적인 ‘경멸적’ 뉘앙스 덕분인지 그냥 오타쿠처럼 생겼으면 ‘야 이 오타쿠야’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옆의 그림이 ‘오타쿠’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의미지의 대표라 할 수 있다.

2. 오타쿠 밖에서 보는 오타쿠-왜 그들을 싫어하는가?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먼저, ‘민간인’ 이라 할 만한 이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애니’였다. (기타 화성인 바이러스, 더럽다(!!), 안경, 변태 등이 나왔지만 그것은 일단 접어 두자) 
 왜 하필이면 ‘애니’인가? 왜 만화 영화가 아닌가? 필자도 그러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만화 영화를 보면서 자라왔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카드캡터 체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것을 보면서 좋아하는 오타쿠들은 많이 있다. 다만 그것을 카드캡터 사쿠라 라고 부르는 것이 다를 뿐. 그래서 지금의 오타쿠들이 향유하는 영상물들은 똑같은 만화 영화가 아니라고 ‘구별 짓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구별 지어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오타쿠들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우리 한국 사회이다. 그들은 소수자임과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권력이라 칭할만한)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자신들이 향유했던, 아름다운 추억이여야 할, 문화가 동등하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종의 ‘구별짓기를 통한 정체성 형성’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현 오타쿠들에 대한 낙인찍기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슬프게도, 사실이 그렇다. 그들은 아무리 봐도 소수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몇몇의 특이한 사람들이 매체를 통하여 알려진 덕분에(화성인 바이러스 등의 TV 프로그램) 오타쿠들에 대한 인식은 더할 나위 없이 나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이 외양 자체가 나쁘기 마련이다. 취미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생활마저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보통 [안경+여드름+돼지] 인 경우 '안여돼' 라 하여 오타쿠와 동일시한다). 물론 오타쿠들 중에도 유명한(혹은 사회적 위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은 많다. 예를 들어, 아소 타로 총리, 무카이야 미노루, 연예인 이시영 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소수이다.
 현재 일명 ‘오타쿠 산업’을 이끄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아르바이트나 부모님의 용돈 등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즉, 칭찬하려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성격에 혼자서 딴나라에 사는 듯한 대화 등은 도저히 그들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타쿠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그들의 피규어 수집 버릇에 대해 알게 된 이후이다. 피규어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의 주인공들을 장난감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인데, 주된 소비자층이 아이들이 아닌 오타쿠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상적인 것을 만들어 판다고 해도 거부감이 드는 것이 정상인데, 많은 문화가 그러하듯이 이것도 많은 제품들이 속칭 ‘변태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관련사진은 대부분 수위가 너무 높으므로 생략한다.
 게다가 게임 쪽도 많은 작품이 성인물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줄여서, 미연시)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미연시란, 말 그대로 연애의 과정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플레이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했던 남성이라면, 대부분 ‘투하트’ 나 ‘동급생’등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타쿠들도 이러한 작품들은 ‘명작’ 반열에 올려두고 한번씩은 플레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분야도, 상업주의적 성 문화의 손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아니, 사실 이 분야가 주된 성인 문화의 무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타쿠들의 이야기지만. 최근의 미연시 중에서는 19금 딱지를 떼고 나오는 작품을 거의 찾기 힘든 상황이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하겠지만, 피규어 수집이나 미연시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오타쿠들의 심정은 필자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주관성’ 을 버리지 못하겠으므로 생략한다. 

3. 일반인 코스프레? 너도 오타쿠!

 그래서 심지어 최근에는, 아무리 봐도 오타쿠로 보이는 이들마저 자신들은 오타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오타쿠라는 말 마저 그 강한 어감을 약간씩 순화시켜 사용한다. [오타쿠->오덕후->덕후] 의 순서가 그 대략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요즘에는 어느 정도 인터넷을 한다는 사람끼리는 오타쿠인지 아닌지 구별이 힘들어 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 중에도 충분히 지식인층이 등장해서 스스로를 잘 ‘감추고’있는 편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일반인 코스프레’라 하여 따로 설명하겠다. 여담이지만, 최근에는 ‘덕후’에 대한 비하적인 말로서 ‘십덕후’ 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타쿠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용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일반인 코스프레’ 이다. 코스프레란, 오타쿠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것을 말한다. Costume Play 를 일본어로 줄여서 コスプレ(코스프레)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 코스프레란? 이는 실제로는 오타쿠인 사람들이 일반인인 척 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아이돌 가수 팬들이 일상 생활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이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과 같은) 줄여서 ‘일코해제’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타쿠라고 불리며 경멸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일명 ‘용자’ 라 불리며 칭송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은 이미 사회적 기반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오타쿠 인증(증명)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할 만한 용기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도 “취향이니 존중해 주자”라고 할 만한 위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취향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언제나 나오는 오타쿠들의 명언으로서,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가 있다. 이것의 출처는 디시인사이드 무협, 판타지 갤러리(당시에는 하나였다)와 타입문넷과의 싸움에서 한 일본 판타지 소설 오타쿠가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싸움들이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었는지는, ‘그들’이 아닌 이상 이해하기 힘든 범주이다. 
 “너희들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도 우리의 취향이 있을 뿐.” 이라고 오타쿠들은 말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축구를 예로 들어 보자. 보통의 남학생들이라면 유럽 축구에 매우 관심이 많다. 바르셀로나, 맨유, 레알 마드리드, etc. 뭐 이런 것 있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은 그 팀별 선수들 목록을 다 외운다. 정말 다 외운다. 심지어는 나이와 경기 스타일, 출신 국가까지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오타쿠들이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좋아하는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4. 오타쿠들이 모이는 곳-온라인, 오프라인

 우리가 주로 모였던 때는 역시나 고등학생답게 쉬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어느 한 반에 모인다. 장소는 일반적으로 무리 중에 속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반으로 암묵적으로 정해진다. 그 사람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더욱 좋다. 또 다른 모임의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주로 도서실에 모여 잡담을 나눈다. 그 곳이 모임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타쿠의 활동은, 대부분의 경우 컴퓨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이기에 누군가 노트북을 가져온다든지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오타쿠들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디시인사이드 : 그저 성지(聖地)이다. 거의 모든 분야의 오타쿠들이 모인다. 그 분야는 철학에서 정치, 디카, 컴퓨터, 애니, 게임, 물리학, 연예인까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분야는 다 있다고 봐도 된다. 최근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인터넷 은어들은 여기서 탄생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채널 : 일본의 익명게시판이지만 현재 한국어 번역이 연계되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일본의 디시(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존재. 여담이지만, 2ch(2채널) 과 디시는 앙숙관계.
웃긴대학 : 유머 사이트. 보통 고등학생 이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필자와 인터뷰했던 이들도 이곳은 잘 알지 못했으므로 생략.
엔젤하이로 : 사이트 운영자인 “함장” 이 만든 개인홈페이지. 엔하위키라는 백과사전을 운영중이다. 위키백과와 속성은 동일하지만 주로 서브컬쳐(오타쿠 문화, 정치관련 뒷담 등)를 다룬다.
 이외에도 온라인 공간으로 이글루, 타입문넷, 루리웹 등이 있으나 그곳은 필자같은 사람이 접하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므로 조사하지 않았다. 루리웹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비디오 게임 정보’ 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는 들었다.
 또한, 오프라인 공간으로도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만 소개한다. 
지스타(G-Star, G★) : 컴퓨터 게임 전시회. 게임 오타쿠들이 많이 출몰한다. 
코믹월드 : 대한민국 오타쿠들의 총집결지. 서울과 부산에서 이루어지며, ‘코믹’ 이라 줄여 부른다. 동인지 판매와 코스프레 등이 이루어진다. 일본어노래 부르기 같은 이벤트도 많이 있는듯.
KOBA : 방송, 영상, 음향, 조명기기 등을 전시하는 박람회. ‘방송부’ 같은 동아리의 학생들이 가면 그저 행복한 곳. ‘행사’ 와 관련된 기계류는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사진영상 기자재전 : 사진 및 영상과 관련된 장비를 전시한다. 브랜드별 최신 제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KOBA 와 성격이 비슷한듯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5. 결론

 이디오진크라지 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에 대해 동물적인 본성으로 싫어하는 것으로써, 문명화된 현대인에게도 남아있는 무조건반사 같은 것이다. 반유대주의라는 광기는 계몽이라는 합리성이 빚어낸 이디오진크라지이다.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려 하며, 그것을 증오하기까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는 일종의 ‘생존본능’ 이다. 즉 우리가 오타쿠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그들을 싫어하고, 배척하고,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오타쿠들도 사람들이 자신들을 싫어하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인 척(일반인 코스프레)을 하며 살아간다.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오타쿠는 그 중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 들이 현실의 ‘매니아층(혹은 오타쿠)’과 겹친다고 해서, 실제 오타쿠들의 다수가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이건 진짜다). 현실의 오타쿠들은, 대부분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소수만이 좋아하는 문화를 향유할 뿐이다.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도 각자의 취향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취향이 매우 마이너한 취향이고, 외부인이 접근하기에는 무언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그들은 사고 구조 자체가 많이 다른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싫어하려면 먼저 그들에 대해 안 이후에 하자. 무턱대고 싫어하는 건 ‘이디오진크라지’ 일 뿐이다. 
 요즘 생겨나는 많은 오타쿠 관련으로서는 밀덕후(밀리터리 오타쿠), 소덕후(소녀시대 오타쿠), 겜덕후(게임 오타쿠, 겜타쿠라고도 함) 등, 많은 분야들이 있다. 심지어 학문 덕후나 종교 덕후라는 말도 등장한다. 위(1장)에서 말했듯이 “오타쿠란, お宅(おたく). '당신', '댁'이라는 뜻을 지닌 이인칭 대명사로 쓰이는 일본어이다. 그렇다. 당신이다!”

후기

 필자는 이 주제를 “오타쿠 문화 하면 그래봤자 서브컬쳐 문화에 불과하겠거니...” 해서 그냥 쉬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문화라는 것은 절대로 그 현상 자체만을 연구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그 맥락과 사고방식 속에서의 이해까지가 성립되지 않으면, 그저 또 하나의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터뷰 대상자들의 반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오타쿠라는 집단에 대해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심지어 오타쿠라고 생각해서 접근하여 오타쿠들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조차, 그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대한 이해는 위에 모두 적어 두었다.
Posted by 미노하
 삶에서는 많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쓸까 아니면 그냥 쓰다가 졸리면 잘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온다. 그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혹자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순수한 의미로서의 자유의지는 절대로 침범당하지 않는다고. 틀렸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분명히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심지어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사회의 영향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그대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필자라면 먼저 도구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도구가 없는 곳에서의 인간(이것을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과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어떤 언어로’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회의 영향력이다. 이렇듯, 개인은 분명히 사회의 영향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회 안에서 주어지는 선택의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가?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사회가 우리에게 허락하는 경로는, 엄청나게 많다. 정말 이것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 것마저 사회는 우리에게 허락한다. 군중심리? 다른 사람이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길인데 선택해도 되느냐고? 그렇다면 그대가 ‘허락’하는 1인이 되면 그것을 따라오는 이는 많다. 여담이지만, 불행하게도 필자는 ‘허락’받는 2인자의 길을 걷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을 한 일이라면,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란 정말 특이한 공간이었다. 그전까지 이루어지던 수많은 인간관계와는 다른, 정말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공간이었다.

 하지만, 난 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고등학교라는 넓은 세상으로 내어 쫓긴 나였다. 그러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어쩌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이 동아리였다. 운 좋게도, 알고 지내던 형이 ‘에클레시아’ 라는 기독교 동아리에 있어서 그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날 이끌어 준 것이 우리 ‘기독동아리 연합’ 이라는 소속감 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공식적인 집단 안에서, 그러한 소속감은 나의 길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나 자신만의 틀 안에서만 살아가던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에클레시아 안에서 나는 영상(미디어)팀에 있었다. 사진과 영상의 촬영에서부터, 편집까지를 담당했다. 예배 때 카메라를 잡고 있는 것은 거의 다 우리였다.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고, 그만 내려놓고 싶었던 적은 셀 수도 없었다. 성적이 떨어진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었고, 다칠 뻔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나는 성장했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각의 크기와 신앙심까지, 얻은 것이 더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큰 선택은, 역시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몇 년 여간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독서. 정말 우연하게 들은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현재에 충실해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추천했다. 그 때부터 나는 독서를 취미로 삼았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일주일에 한권 정도. 그것도 고등학생 수준의 책이 아닌,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는 책들이었다(물론 그 책들이 교재로 쓰인다는 사실은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고등학교 2, 3학년 시절동안 약 80여권. 순수하게 재미로 읽었던 가벼운 책(판타지, 현대소설 등)을 합하면 약 4~5백 권 정도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고3 시절에는 공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열심을 다해서 했던 것 같다. 디데이 100일부터 보았던 영화가 약 70편에, 드라마가 약 20시즌 정도를 보았으니...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배경 지식이 되어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당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놈’ 으로 보았다. 상식적으로,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이라면 문제집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정말 그 해의 내 수능 점수는 ‘평소처럼’ 나왔다. 당시의 내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은 ‘재수’였다. 우리 때의 수능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08학번의 수능이었다. 나와 같은 재수의 길을 선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나는 그 곳에서도, 꿈을 좇고 있었다. 나의 꿈 또한 조금 특이했다.

 나는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이라서 쓰는 가식적인 말이 아니다. 난 진짜로 사회학이 하고 싶었다. 사회학의 길을 선택한 경로조차도 그리 평범하진 않았다. 사회학을 처음 생각했던 때는, 하나님(필자는 개신교도이다)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것은 고1 여름 수련회 때였다. 중 3때까지는 안티크리스천에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얼결에 지원하게 된 기독동아리에서 큰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존재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자에게 이렇게 열심히 기도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수련회 때 저녁 부흥회 시간에, 저는 정말 우연히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질감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 때 ‘나도 한번 따라 해 보자’라고 생각했고, 주님을 만났다. 처음 든 생각은 무엇보다도, 그 감격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게다가 믿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죽어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그들이 생각났다. 중국(그 수련회의 주제였다)과 아프리카. 그 곳에서 베토벤이, 셰익스피어가, 칸트가, 단지 그 곳에 태어났단 이유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가진 꿈은, ‘지원해 주자’가 아닌 ‘한 번 바꾸어 보자’였다. 그때부터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재수생으로서의 할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사람이 하루에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 쉬는 시간을 빼고 남은 모든 시간을 공부에 ‘부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의외의 결과였다. 정말 내 하찮은 머리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점수가 나왔다. 그 때 나는 사회학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아마 그 당시에는 내 꿈보다 돈을 더 쫓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전공이 ‘경제학’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것. 학교를 선택하던 순간에는 몰랐지만, 대학에 와서 정말 ‘넓게’ 배우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해 주었던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고등학교 일을 도와주면서였다. 배재고등학교에서 하는 ‘아펜젤러의 두 번째 기도’ 라는 집회가 있다. 형식은 항상 바뀌지만, 그래도 매년 반복되는 ‘뮤지컬’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거기서 09년의 나는 뮤지컬을 도와주게 되었다. 

 어느 날, 동아리 OB(졸업생) 모임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갔다. 그래서 들은 말이 “너 뮤지컬 대본 좀 써라” 라는 말이었다. 사실, 적성에도 맞지 않던 공부에 지쳐가던 나는, 그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본 쓰기에서 끝나지 않고, 뮤지컬의 감독을 맡았다. 물론, 말이 감독이지 발성훈련, 호흡훈련, 연기지도, 안무 짜기, 당일 촬영과 보컬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가능성들을 보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보았고, 내가 가졌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냈다. 

 그 때 선택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친 짓이 될지도 모르는 선택이, 다시 한 번 수능을 보는 것이었다. 정말, 절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제학을 배운 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경제학 성적은 C+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때의 상황에서는 아무도 내 생각에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고민했던 것은 배부른 현실과 배고픈 꿈 사이의 중간점을 찾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최소한 나의 기준에서, 사회학은 원래 전공하던 학문보다는 훨씬 ‘배고픈’ 학문이었다. 그때 내가 전공하려던 것이 경제학과 응용통계학의 복수 전공이었으니까, 아마 절대로 굶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학을 하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듣는 말은 “그게 뭐야?”였다.

 그 때, 내가 사회학을 할 만한 용기를 가지게 해 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그 분의 전공이 사회학이었고, 그래서 난 사회학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말했지만, 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잘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 분마저도 내가 다시 수능을 보겠다는 말에 그냥 ‘응원’ 만을 해 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래! 너라면 잘할 거야~!” 라고 하던 얼굴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나름 잘 해냈다는 것. 그래도 재수 때만큼의 성적을 유지해내는 것은 성공했다. 물론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그 중요한, 학교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학교를 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나는 그런 ‘전도유망한’ 학교를 가서 ‘편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처음부터 보았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힘들게’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나는 서강대학교에 진학했다. 더 좋아 보이는 길들이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방법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곳 로욜라 도서관에 있고, 이 글을 쓰면서 잠을 깨려고 별의별 스트레칭을 다 하고 있고, 이 글을 어느 정도 쓰다가 엎드려서 한숨 잘 계획이다. 그 후에 잠이 깨면 기지개를 펴고 다음 수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선택 몇 가지가 있다. 지난 2월 한 달간 했던 일들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신입생들에게 2월은 바쁜 달이다. 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학교와 집을 오가고, OT와 입학식, 신입생환영회 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알아가야 할 시기였다. 그리고 난 그때, 연애를 택했다. 정말 짧은 기간 동안의 연애였지만 그래도 나는 절대 그 일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수강신청이나, FA제도 같은 것은 혼자서도 배울 수 있었고(이건 진심이다, 어차피 학교별로 큰 차이는 없으니까) 주된 수강과목도 다른 1학년들과 겹치는 수업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수강신청기간에 교회 수련회에 있었다. 나에게 교회 수련회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고1때의 여름 교회 수련회 때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 한 번의 수련회가 나에겐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을 하는 시간대(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녁8시부터 12시였다)또한 예배시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즉, 교양과목은 한 개도 신청하지 못했다. 내가 수강신청을 했던 시간은 다음날 수강정정기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최종적으로 신청한 과목은 이렇다. 사회학개론, 사회조사방법론, 사회학사, 정치학개론, 일반심리학, 인류학개론.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1학년이다. 위의 목록에서, 필자 혼자 1학년으로서 수업을 듣는 것이 3개정도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사실이다. 나의 인생 중, 2년의 황금기를 멀리 돌아오고 나서야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기에 즐겁게 행할 수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지금 이 글은 며칠간 쓴 것이기에 문체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을 주로 쓰는 공간은 로욜라 2관 4층 노트북 사용가능 테이블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곳은 우리 집 거실 바닥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다. 이 큼지막한 노트북을 꺼내는 것 자체가 속된말로 ‘쪽팔린’ 일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지하철에서 잠이 오지 않고, 읽을 만한 책을 챙겨오지 않았다면, 글이라도 쓰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한 번의 여담이지만, 사회학 한다는 놈이 이렇게 사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서야...

 지금까지 이 글을 쓰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정말 고등학교 이후의 나의 삶은 ‘내 멋대로 살았다’ 라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최근에 겪었던 많은 일들을 보면 말한다, “넌 왜 이리 인생에 굴곡이 많아?” 라고들. 내가 굴곡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꿈을 좇기에는 충분히 험난한 곳이다. 그런 험난한 곳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라면 그래도 잘 산 인생이 아닐까?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회에 속해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추천하는 수많은 길들이 있다. 선택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몇 개의 길이 있다. 나는 그 중에, 한 번도 추천받지 못했던, 한 개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번. 그래서 나온 결과는, 항상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많은 길들이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에 만족한다. 그렇지 못한 삶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타카’ 라는 영화가 있다. 유전자로 인한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그리는 영화이다. 지금도 가끔, 너무 하루하루가 힘들다 느껴지면 그 영화를 본다. 주인공은 “실패를 생각했다면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었어.” 라고 절규한다. 숨이 전혀 차지 않는 것처럼 달리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 듯이 숨을 쉰다. 심장마비에 걸려 이미 죽었어야 하는 심장으로 그 누구보다도 오래 달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경쟁들을 하나하나 승리해 나간다. 

 과연, 실패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실패라 규정지어야 하는가? 물론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회의 규범을 벗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많은 ‘틀’ 들이 과연 우리가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인가? 막스 베버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성의 쇠장 iron cage 안에 갇혀 살아간다고. 난 지금 이성의 틀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이성의 틀을 조금만 넓히는 것이다. 실패해도 좋다. 아니, 십중팔구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한둘은 성공하지 않는가? 그 한두 가지의 성공이,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루었지 않는가?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이,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이다.

 니체는 ‘적극적 허무주의’ 에 대하여 말했다. 이성으로 인하여 절망적인 사회에서, 시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번 더 해보라 말한다. 그가 비이성적인 사람인가? 그는 단지 그 절망적인 상황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희망을 볼’ 뿐이다.

 지금의 사회는, 충분히 과거보다는 좋아진 사회이다. 충분히 열려 있는 사회이다. 충분히 원하는 꿈을 좇을 수 있는 사회이다. 과거에는 꿈을 좇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위대한 업적들은 과거에 많고 많게도 쌓여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무엇인가?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아니, 실패 그 자체가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실패했다고 다시 한 번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저 실패자일 뿐이다. 다시 한 번 시도할 때, 그는 ‘도전하는 자’ 이다. 그리고 나는, ‘도전하는 자’ 이다.
Posted by 미노하

봄이 왔다기엔 아직 추웠던

그래도 강의실 안에선 따뜻했던

졸음 넘치는 시선들에 서 있던

답은커녕 질문조차 얻지 못했던

수그러진 고개 아래를 살피던

바람은 날개를 접었다.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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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노하
웃으면 웃어질 줄 알았다. 
한 번 웃어보았다. 
다행히, 웃음은 나를 잊지 않았더라. 

그렇게 우리의 걸음은 멀어지지 않았다. 
만족하려 했다. 
너는 만족한다. 

물러나는 이 손가락, 
몇 걸음 그 거리로, 
다시 한 번 뒤돌아 보았다. 

눈부신 안개로 흩어져 가며, 
설렘은 나를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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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노하
기침, 
그렇게 또 한 번의 신음을 
끄집어낸다. 

이리 괴성을 질러봐도 어차피 
마음속 그대를 향한 마음은 
도저히 나오기를 꺼린다. 

그저 보고 싶었다. 
그저 끄집어내어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 번의 기침. 

나오라는 마음은 나오지 않고 
걱정하는 마음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렇게 한 번 더. 

그 걱정하는 마음은 환한 미소로 
이 마음을 찔러온다. 
그래, 잘 살아 있구나. 

쥐어 짜며 그 마음을 닦아낸다. 
이 마음도, 그렇게 닦이길 바라는, 
그런 작은 소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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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네 번의 나무 부딪히는 소리그렇게 어두움을 채우며 흩어져간다피크와 현의 가벼운 충돌이 소리를 만들어낸다소리는 작게그리고 다시 한 번 크게 퍼지고 난 뒤에야 다시 들려온다환호성으로 화답한다무언가 즐거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 이름을 외치고 있는 것 같다하지만 알 수 없다저것이 환호인지 절규인지혹은 조롱일지도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지금 들리는 것은옆 사람, ‘우리의 소리뿐.

무대 위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가장 밝아야 하는 무대이지만무대 위에서는 전혀 다르다.단지어둠을 볼 뿐이다어둠을 향해빛을밝은 소리이고자 노력하는그 외침을 흩뿌릴 뿐이다그렇기에 이 노래는더욱 더 밝기를 원할 뿐이다순수지금 그런 것을 논할 때가 아니다이 즐거움을단지 순수함이라는 언어로 억압할 순 없다

뛴다달린다날아오른다!

조명은 점점 달아오르고그 열기는 짙은 스모그로 채워진다마이크를 부술 듯이 쥐고날아오르는 그 걸음은 다시 멈추어침묵으로써 폭발한다수많은 코드를 달려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그래끝이다.

이렇게 우리의 짧은 걸음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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