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말하는 '시위꾼'의 뜻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무리'라면, 나는 기꺼이 시위꾼이 되겠다.
너희들이 말하는 '좌파'의 뜻이 '상처를 드러내어 치료하고 치료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감사히 좌파가 되겠다.
너희들이 말하는 '빨갱이'의 뜻이 '희망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라면, 나는 당연히 빨갱이라 불러주어 마땅하다.
너희들이 말하는 '입진보'의 뜻이 '이론의 담론화 자체에 힘쓰는 학문업자'라면, 내게 입진보라 칭하는 것은 칭찬이다.

20세기 초반 구조주의와 마르크시즘의 혈통을 받아 태어나, 유럽 사회학계를 휩쓸어버린 사회이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담론 구조와 그의 해체, 구조주의적 사고구조에 대한 해석적 관점 도입과, 그를 통한 마르크시즘의 체계화. 문화 자체의 상업화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 상부와 하부구조의 재해석. 이 미친 양의 작업을 모두 해냈던 비판이론을 단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네가 무슨 권리로 구분해? 구분이 가능하긴 하냐? 아는 척 쩌네."

결국, 진보든 보수이든, 스스로의 닫힌 체계 속에 갇혀, 수많은 보조가설들만을 생산해내고 있다. 여기까지가 비판이론을 5년동안 공부한(맛뵈기만 했던 고등학교 시절 포함) 서요한이라는 사회학도(나는 아직 업자가 아니니까)의 관점이다. 
너와 나는 있지만, 아군과 적군은 없다. 모든 것은 하나이며 동시에 전체이다. 각자의 논리성에는 결국 공유하기로 합의한 합리성만이 존재한다. 지식은 존재하지만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만 더 말하겠다.

"네가 무슨 권리로 구분해? 구분이 가능하긴 하냐? 아는 척 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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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는 구교와의 논쟁 과정에서 성상파괴주의를 주장하였다. 이는 sola gratia와의 연결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데,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신에 대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상은 그저 '우상'이 될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인간으로부터 외재화되어, 결국 fetishism으로 이어진다. 결국 신 자체에 대한 숭배는, 성상으로 인해 방해받는 것이다.

신교는 합리화의 물결에서 최우선에 있던 자들이다. 지식의 보편화, 과학에 대한 믿음, 청각 이미지. 그를 통하여 쉽게 '전해질 수 있는 것' 에 대한 믿음과도 비슷하다. 복음은 전해져야 존재하는 것. 스스로 알 수 없는 '신'.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 

가톨릭에서는 고행에 꽤 큰 가치를 부여한다. 어찌 보면 지금의 포괄주의와도 같은 논리일 수 있다. 고행을 통해서 죄가 속죄되고, 선행을 통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 각자가 각자의 신을 섬기지만, 결국 그 모두가 하나님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지, 즉 성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신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이미지 자체가, 자연 자체가 하나님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인간과 자연의 구분, 혹은 경계선을 낮추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과학은 주체와 타자를 맹렬할 정도로 구분한다. 거칠게 구분된 이 세계는, 도구화된 이성을 통해서 통제된다. 주체에 대한 보호, 타자에 대한 조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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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곤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직접적인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시오.

 

렌탈회사(혹은 리스)의 경우를 볼게요. 이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미리 상품을 구매해서, 일정한 대여료를 받고 상품을 빌려줘요.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에서는, 이런 렌탈회사들을 분석할 때는 기존 상품의 판매방식 관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죠. 새로이 등장하는 이런 판매자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들은 경험을 판매합니다.

이제 자본, 좀 쉬운 용어로 바꾸자면, 상품(아예 의미가 달라질지도 모르지만, 논의는 그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의 회전력은 굉장히 높아지고 있어요. 컴퓨터의 경우를 볼까요? 무어의 법칙이란 것이 있어요. CPU의 처리속도가 18개월마다 2배씩 높아진다는 것이죠. 조금 더 격하게 바꿔볼까요? 3년마다 4배씩, 9년이면 64배의 발전을 합니다. 자본의 순환주기보다 기술의 발달이 더 빨라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규모 자본가들은 기존의 생산시설이 낙후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결국 리스라는 상황을 통해서 거대 자본에게 종속되는 현상을 보이죠. 물론 여기서 종속이라는 말은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겠지만, 거대 자본 중 어떤 거대 자본과 연결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 프롤레타리아화라는 현상은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클라우드 컴퓨팅이 이를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개인은 컴퓨터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죠? 그래서, 개인은 그러한 발전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 클라우드 컴퓨팅입니다. 클라우드란, 컴퓨터의 작업을 특정 서버 컴퓨터에 연결해서 수행하며, 개인의 컴퓨터는 단순한 수신기(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모니터)역할만 수행합니다.

대표적인 클라우드 컴퓨팅의 예로는 애플의 icloud(혹은 아이튠즈), 구글의 대부분의 서비스들, dropbox, Wolfram Alpha 등이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이러한 클라우드 서비스가 반 무료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특정한 요금체계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각각의 부품회사, 혹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가질 수 있었던 수익들이, 특정 대기업에게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살펴볼 것이, 이는 모두 서비스업입니다. 클라우드의 생산자든 소비자이든, 결국 서비스를 사고파는 것이죠. 혹은 이에 부가되는 첨단 산업도 고부가가치 산업이긴 하지만 결국 부의 집중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O-Ring Theory 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순간 이러한 발전 속도를 놓치게 된다면, 기존에 서비스의 생산자의 위치에서 클라우드의 소비자로전락하게 된다는 뜻이죠.

소프트웨어 산업을 예로 들어도, 모든 프로그래머가 MS에 있는 사람들처럼 부자가 아닌 것처럼 말이죠. IOS나 안드로이드 같은, 좀 더 가까운 곳에서라면, WindowsOSX같은, ‘위대한수준의 OS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지구 반대편(대표적으로, 한국)에는 그저 코딩하는 노예일 뿐인프로그래머들이 발에 차이도록 많은 상황입니다.

세계화는 국가 간의 경계선을 흐려 놓았고, 낮아진 국경의 담을 넘어 거대자본(혹은 국가)들은 중소규모 자본(혹은 국가)들의 영역을 침식하고, 또 흡수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부의 편중 현상이 일어납니다. 사실, 말이 좋아 편중이지, 반대로 말하면 빈곤의 세계화, 혹은 빈곤의 보편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본주의의 강화추세는, 개별 경제주체의 유동성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려 노력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논의에서처럼, 액체 근대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사회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지만, 쁘띠 부르주아지, 혹은 쉬운 말로 자영업자들은 그러한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죠. 이는 가까운 슈퍼마켓만 보아도 알 수 있죠. 구멍가게가 살아남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미 대기업들이 이런 틈새시장의 영역을 침범하여, 종속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중소규모의 자본은, 그러한 흡수를 버틸 능력이 없습니다.

오픈마켓의 경우, 한국의 지마켓과 옥션은 이미 이베이(eBay)의 자회사나 마찬가지입니다. 개개인이 쇼핑몰을 열어 성공할 수 있다던 과거의 성공신화들은, 말 그대로 신화의 수준으로만 남게 되죠. 개인들은 그저 이러한 거대 쇼핑몰의 고객이 되는 상황입니다.

클라우드 자체에 대한 소유권, 혹은 생산수단은 거대 자본가에게로 집중됩니다. 렌탈(리스)회사들은 경험을 판매합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을 빌려주어서, 그것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하죠. 사용한다는 경험 자체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 자체는 매우 안정적인 형태로 고정됩니다.

한국의 기술체계, 특히 휴대폰 기술의 경우는 이미 갈라파고스로 변해 버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하여, 외부에 대한 적응력이 극도로 낮아진 상황이죠. 이는 내수시장이 자체의 생산력을 통제범위 안에 둘 수 있는 상황에서는 상관없었지만, 클라우드가 도입될 정도로 통신 기술이 발달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가장 빠르게 흡수당했습니다.

맨 처음 한국에 아이폰이 등장할 시기에는 윈도우 모바일(이하 WM)등을 사용하여 기존의 피쳐폰 체계를 유지하려 했지만, 어느 순간 버틸 수 없게 되자 결국 안드로이드 & IOS”의 시장 양분 체계를 만들어버렸죠.

클라우드 컴퓨팅의 시장 또한 동일합니다. GMail 등이 대용량메일과 메일 처리 시스템의 클라우드화를 이룩하자마자, 한국에서도 자체 서버를 사용하여 대용량메일을 시도해야 하는상황이 만들어집니다. 반응하지 않으면 결국 도태될 뿐이니까요.

한국의 경우는 더 시급한 것이, 매우 뛰어난 인터넷망을 활용하려는 개인의 적극적 의지에 의해 촉발됩니다. 비정규직법과 FTA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서, 외국 노동력의 수입이 훨씬 쉬워지는 상황과도 쉽게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겠네요.

결국 기업은 스스로 발전할만한 동력이 부족해집니다. 공룡기업들이 보편적으로 등장함에 따라, 결국 중소규모의 기업들은 흡수당하거나, 혹은 도태당해야 하는 양 갈래 기로에 설 수 밖에 없습니다.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이러한 현상에 반하는 사례는 충분히 존재할 수 있겠지만(한국에서의 V3, 카카오톡 등이나, 외국의 중소규모 게임회사에서 만든 대작들) 일반적인 분석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결국 20:80의 사회 논의는, 그나마 예외가 될 것이라고 여겨졌던, 혹은 벤처기업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겨졌던,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도 이렇게 노골적인형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가 이루어집니다. 현재의 사회적 혼란에 대해, 한국의 경우는 빨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용어를 사용하여, 책임을 전가시키죠. 이러한 특정한 자체는 모든 문화 체계 안에 존재합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복지일 수 있고요, 어떤 곳에서는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일 수 있겠죠.

물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소비적 복지에 대한 비판은 충분한 정당성이 존재합니다. 복지로 인해, 그것의 수요자들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일종의 방어력이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스펜서의 유기체적 사회 논의에서 볼 수 있다시피,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분업에 의해, 자신들의 역할 이상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업을 겪는다면, 혹은 한번 생산수단을 흡수당한다면(빼앗긴다면), 다른 직종으로 쉽게 옮겨갈 수 없는 상황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대안으로 등장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입니다. 노동시장에서 가치가 없어진, 혹은 시스템 상에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재활용하기 위한 것이 그러한 생산적 복지, 즉 교육입니다. 교육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배경에서 등장했다고도 할 수 있죠.

출발점이 동일하다는 것을 확신시켜준 이후에경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출발점은 동일하지만, 절대로 길 자체가 동일할 순 없습니다. 누군가는 내리막길을 달릴 테고, 누군가는 진흙길을 달리고 있겠죠. 진흙길을 달리는 사람은 결국 그 진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멈춰버리거나, 혹은 빠져나오기 위해 뒤로 걸어야 합니다. 혹은 다른 사람들이 뛰어가는 데 방해된다는 핑계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병조차도 빼앗겨야 하겠죠. 그리고 그것은 잘 뛰는 사람을 잘 뛰게 두어야한다!”라는 논리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2.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신뢰제고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오.

 

여기서도 예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08학번에게 있어서 입시제도란, 말 그대로 저주받은형태였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저주받은 89”라고 칭하기도 하죠. 그래서 08~10까지의 89년생끼리는, 서로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이 존재합니다.

지옥 같은 입시형태를 거쳐서, 결국 대학이라는 곳에 왔다는, 그래서 거기서 만났다는, 일종의 동료의식이 존재하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저희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전에 94학번들이 그랬고, 더 이전에는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랬죠.

이러한 특정 세대들의 공통점은, 결국 각각에게 일종의 연대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청소년기에 겪었던 특정 사건, 혹은 조건들은, 개개인의 의식 속에 매우 깊은 수준까지 박혀 있게 됩니다.

이는 자신들의 이익집단적 세대개념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단순한 언어적 공동체(혹은 상상의 공동체)’수준에서 끝날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이라면, 이러한 시간으로서청년기의 구성주의적 계기로 인해, 실제로 이런 세대적 공동체의식이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옆에 있는 학우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을지라도,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학교라는 이름으로 공유하는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죠. 같은 학교가 아니더라도, 같은 지역, 심지어는 같은 국가(외국에 나가 있을 때라면)에도 해당합니다.

이러한 공동체의식은 결국, 서로에 대해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즉 서로를 알고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 수 없다면, 결국 사회의 연결망 자체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알 수 없다면, 상대방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되며, 결국 상대방을 믿을 수 없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회적 자본(혹은 신뢰)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위에서 말했던 저주받은 89’ 역시, 스스로가 겪어본 입시제도이며 동시에 상대방도 그것을 겪었으리라는 기대의 연장선상에서, 그러한 경험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예측가능성, 혹은 지식은 권력으로 작용합니다. 상대방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측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힘으로서 작동하죠. 하지만, 공유라는 말을 일치라는 말로 살짝 바꿔준다면, 지식 자체는 권력뿐만 아니라 연대감 형성에도 작용할 수 있게 됩니다. 지식이 권력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지식의 공유로 인해 상호 영향력으로 작용하여, 연대감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는 기반입니다.

물론 이런 단순한 세대개념이 사회적 자본으로 발달하려면 아직 많은 난관이 존재합니다. 경험의 공유로 형성되는 공동체는,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배타적인 형태로 작용합니다. 결국 이는 사회적 자본의 편중현상으로 인해 갈등이 구조화되어, 결국 더 큰 갈등을 부를 수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반 자체는, 사회적 자본이 형성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결국 더 넓은(혹은 더 많은 사람을 포괄하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보편적인 집단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과거에 2002 월드컵 때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축제적 분위기에서의 사람들은, 의례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순간만큼은 한국인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되는 것이죠. 문제라면, 그것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특정한 상징물(예를 들자면 광장에 축구선수나 축구공 동상을 세운다든지)이 존재하지 않는 의례는,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부여하지 못합니다.

종교단체, 특히 교회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최근 교회에 대한 많은 공격은, 그들의 기부금(헌금으로 칭하겠습니다)을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잘 드러나지 않음에 기인합니다. 물론 이는 기독교 성경에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말을 너무 충실하게 지킨 나머지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 모르게 했기 때문에, 결국 교회라는 단체 자체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자신의 헌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다는 것은, 예측가능성의 저하와 일맥상통하죠. “내가 너 꿍꿍이속을 모르는데 널 어떻게 믿어?”라는 질문이 이런 상황에 잘 맞는 질문이 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측면은 교회 내에서의 수많은 의례를 통해, 종교 자체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는 측면으로 무마시킵니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은 최소한 교회 내부에서는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깥으로, 미디어에서 드러날 때는 상황이 전혀 달라집니다. 미디어는 미디어 나름의 객관성을 지니고 있고,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폐쇄성(혹은 불투명한 예산 집행)을 비리와 연관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즉 종교단체들의 이미지적 정당성을 지워버리고 있는 것이죠.

이와 똑같은 이치를 국가로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법치국가라는 곳에서 법 집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해있고, 공무원들은 자신의 업무에 태만하다는 내용의 담론이 이미 구성돼있으며, 아이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믿음이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왔죠.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위해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해야 하고, 그것은 곧 비용으로 작용합니다.

여기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증진시키기 위해,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가져오는 것은, 그럭저럭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가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 알 수 있고(지식), 서로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통한 권력적 의사소통(혹은 의사-의사소통, pseudo-communication)이상의, 상호 영향력을 지니는 대화는, 사회적 연대감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공론장의 개념은 매우 이상적인수준에서나 말해질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공론장이 형성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 자체를 나누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공론장의 형성은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SNS가 대안으로 등장하긴 했지만, 그것들도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만 듣게 됩니다. 국민신문고 등이 정부에 대한 의견 제출의 문으로 작동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요청-수용/거부의 단선적인 측면일 뿐이지, 담론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자본주의(혹은 국가라는 체계 자체)는 너무나 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은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예측을 내어놓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되죠. 국가의 경우도, 종교단체도, 사회 조직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거대한것들에 대한 신뢰 확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개개인 수준에서 연대감 형성을 통한 신뢰를 확립해야 합니다. 청년기 시절부터 어떤 특정한 연대감을 지닐 만한 단체, 혹은 의례에 참여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그것이 실제로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도록 하는 담론을 형성합니다.

정부의 신뢰도라면, 공기업의 임금 체계 개선이나, 경제 관련 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가 답이 될 수 있겠죠. 즉 법적 체계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싱가포르의 육체적 처벌과 같은 비인간적인 법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일벌백계적 측면은 필요하니까요.

속된말로, “정부는 까야 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정부를 까는사람들에게 깔 거리를 주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죠. 비리 등에 대한 완전한 공개와 처벌을 통해, 정부 자체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증가시켜야 합니다. 아예 이성적 측면을 강화시켜서 쇠울 속에 넣는 것입니다.

 

3. 한국사회에서 개발독재(development dictatorship)의 긍정적인 결과와 부정적인 결과를 비교하여 논하시오.

 

먼저, 다른 이러저러한 것 말하기 이전에, 경제가 발전했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전이 아닌 성장이라고 해야 맞겠지만요. 어쨌든 이런 수치상의 성장 자체는 한국 사회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입니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국가적 신뢰도도 함께 올라갔죠. 이는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국제관계에서도 수많은 이점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면, 최근 의궤 반환의 경우가 있어요. 과거에는 의궤 반환에 대한 주장의 방식이 단순히 윤리적인 요청에 불과했던 반면, 지금에 와서는 일종의 경제적 부담감의 방식으로 압력을 선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또한, 독재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던 지배 시스템 역시, 현재에도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베이비붐 세대의 경우, 독재 정권의 경찰국가적인 검열시스템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지금에 와서도 어느 정도는 자기 검열을 수행하곤 하죠.

물론 이것이 개인에게는 긍정적인 일로 작용하지 않을지라도,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는 어느 정도 안정에 기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까지 이어 오는 보수정당의 집권 자체는, 정치적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죠. 이러한 정치적 안정성은, 한국 사회의 경제력 발전에 큰 도움을 미쳐왔고, 또한 일종의 예측가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현재는 이런 보수정당들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존재하지만, 아쉽게도 일부분일 뿐입니다.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 최소한 한국 인구의(혹은 정치 참여자, 즉 투표자 비율의) 절반 이상의 사람들은, 현재의 시스템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이 계급배반이든, ‘국개론이든, 심지어 그것이 “XX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식의 자포자기식 신음일지라도, 결국 그에 대한 지지도 자체는 그리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식의 경제관념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묘한 이중주를 만들며, 점점 더 견고한 형태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놀랍도록 안정적인 형태죠. 개발 독재 상황에서의 풍요, 하지만 그에 따르는 노력하면 성공하는 개인이라는 관념 자체는, 현재 영웅적 세대들의 꾸중의 이중주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종의 좋았던 옛 시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보았을 때, 경제가 성장했고, 높은 안정성을 현재까지 유지시켰으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에 훌륭한 기반이 되어 준 것이 개발 독재입니다. 이는 애초에 성장의 역량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전후 한국 사회에 윤활유를 부어넣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IMF 이전까지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출발합니다. 경제의 성장이 IMF 이전까지였다는 말은, 개발독재의 경제 성장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계가 거기까지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IMF 이후부터는 그러한 정부 중심의 발전’, 혹은 수정자본주의적(혹은 케인즈주의) 발전양식 자체는 그리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원료의 수입과 상품의 생산, 즉 수출지향 산업화로 인해, 국제정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수입대체 기간이 매우 짧은 편이었고, 또한 내수시장 자체가 매우 작기 때문에,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에 더 무게감을 두어야 하는 문제가 존재하죠. 하지만, 그런 만큼 오히려 더 인적자원에 투자하는 식으로 발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성장했던 나라는, 사실 대부분의 "late development" 국가들이 이에 속합니다. 물론 이들의 성장 방식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이들을 벤치마킹 하는 것 자체는 가능합니다. 극단적인 사례일수도 있겠지만, 싱가포르가 그 예가 될 수 있겠죠. 물론, 극단적인 사례일 뿐입니다.

결국, 경제의 성장측면에만 집중한 덕분에, 경제의 발전자체에는 그리 큰 투자를 하지 못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자유주의에서 이어오는 신자유주의(혹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부활로 여겨지는)로 인한 과도한 경쟁과 그에 대한 합리화(혹은 정당화)로 인해, 오히려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역량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의 역량이 감소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시로, 빈부격차의 확대를 들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발전 없는 성장의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부의 집중입니다. 부의 집중은 곧 빈곤의 보편화로 치환될 수 있고 말이죠. 이로 인해서, 현재는 경제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안정적인 구조자체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발전(심지어 성장조차도)하지 않고 유지되는 구조로 인하여, 결국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축소됩니다. 이는 사회적 자본의 감소로 연결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비효율성을 부를 수밖에 없죠.

또한, 사회가 성장하는 상황에서는 상관이 없겠지만, 현재와 같은 고착적인상황에 이른다면, 유동적인 상황에 대한 유기체적 대처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스펜서의 논의에서처럼, 사회의 분업화가 진행될수록, 환경에 대한 개인의 적응력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만큼, 구조에 약간이라도 변화가 일어난다면 개인의 입장에서는 삶 자체가 무너지는 것과 동일한 상황을 겪게 되죠.

이러한 혼돈의 상황은, 결국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부르게 됩니다. 이는 결국 과거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결국 사회적 갈등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이 등장하는 세대들은 과거 기득권층이 만들어놓은 불합리한 제도들을 개선해야지 자신들의 이익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중화학공업과 정부투자 일변도의 경제정책은, 현재 한국 사회, 심지어 세계정세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으니까요.

이는 88만원 세대에서 선언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의 연장입니다. 개발독재가 만들어냈던 안정성, 그 안정성의 가치를 거부하는 세대들에 의해서, 새로운 갈등의 요소로 변화합니다. 수치상의 성장 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은, 교육받은 사람들, 최소한 자신들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시스템 자체의 적으로 만들어버리죠.

결국 과거 개발독재 상황에서는, 정부, 정부에 충성하는 기업, 노동자들 정도만으로 구성된 사회를 지향합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발전의 기회를 걷어차는형국이 됩니다. 엘리트에 대한 포섭이 점점 힘들어지고, 교육받지 못한(혹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를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한 계급배반만이 일어나며, 종국에는 그들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함으로 인해서 사회적 신뢰도가 하락하게 됩니다.

이는 사회적 합의 구조의 부재에서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군사독재의 잔재에서 출발한 신분제적인 사회 관념으로 인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사회적 공론장의 출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죠. 그로 인해, 같은 계급(경제적 의미론만으로 따지자면) 내부에서조차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각자가 경쟁 시스템 안에서 잘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밀어내야 하는 상황인데, 타인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그것이 정당화되는 것이죠.

사람은 주체에 포함되지 않는 타자에 대해서는, 충분함 이상으로 잔인하게 될 수 있는 능력이 존재합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혹은 주체 자체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타자는 제거되어야(혹은 나에게 그대의 것을 주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주의적 경쟁체계로 인해 정당화됩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례를 가져와서 말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 가난한 체대 학생 A가 있습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용역으로 일하며, 철거 현장이나 시위진압 등에 동원되기까지 하죠. 하지만 그나마 잘 살아 보기 위해 믿음을 가지고 삽니다. 화려한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마련된 교회 건설현장에서 노가다로 일하고, 그 돈은 다시 헌금으로 바칩니다. 열심히 일하고 그 돈을 헌금하면, 결국 축복받아서 잘 살게 된다는 믿음이죠. 뭐 바치고 나면 주님이 다 채워 주시겠지.”라는 말로 그냥 넘겨버립니다. 지금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은, “다 그놈의 사탄의 자식들, 공산주의자 놈들이 문제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공산주의자들은, 시위하는 사람들이나, ‘장로 대통령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겠죠.

이는, 자신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을, 모두 하나의 타자로 뭉뚱그려 설명할 수 있는 종교의 역할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비 기독교인들은 그에 대한 확신이 있을 리 없겠죠. 오히려 그런 인식 자체를 순진한생각으로 인식하여, 기독교인(혹은 보수적 정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들을 타자로 인식하게 됩니다. 결국 종교 또한 하나의 사회적 갈등 요소로 작용하게 되죠.

종교가 사회적 공론장이 아닌, 정치집단의 연장선상이 되는 것 또한, 개발독재시기에 살아남았던 보수적 기독교 종파들의 영향력이, 종교계에서 가장 강한(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규모 또한 가장 큰 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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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노하

필자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지리라는 과목을 매우 좋아했던 경험이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고등학교 생활이란, 매우 답답하고 억압적인 공간(혹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리를 공부한 사람의 눈으로는, 지도라는 것 자체가 나에게 다가오는 방식이 달랐다. 지도의 어느 한 점을 찍는 순간, 나는 그 곳에 있었고, 그 곳의 공기를 느끼며(기온, 습도, 풍향, 풍속 등으로 간접적이나마), 그 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리학 자체는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물론 지질, 기후, 심지어 생물학적 관점까지 도입해야 하지만, 결국 그 주제는 땅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다. 이렇듯이, 사람은 땅 위에 발을 디디며 살아간다. 아무리 경제학이 발달되어도, 지역적 거리감(혹은 그에 따르는 이동시간)이 고려되지 않는 이상, ‘바늘 끝 경제학이라 비판받게 된다. 인간의 육체적 한계가, 경제지리학의 근본 원칙인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라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시공간 속에서 사고(혹은 생활)의 방식이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한 인식론적 다양태(variation), 멀게는 각각 민족들의 신화(에스키모들에게 지옥이란, 영원히 축축하고 추운 곳이다. 히브리의 지옥이란, 불구덩이이다)로부터, 가깝게는 우리네들의 안방-창고로 이어지는 위계적공간 분화로까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우리가 수업을 듣는 공간 자체는 강의실이라는 속성이 부여돼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간 자체에는 어떠한 의미가 내재적으로부여된 것이 아니다. 어떤 특정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이 공간(space)’의 의미가 설정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 설정의 결과물로서, 우리에게 다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장소(place)’라고 부른다. 실제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로 공간보다는 장소가 크다.

다산관이라는 건물 자체로만 본다면, 이는 분명 텅 빈 공터로 존재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을 세우고 강의실만한 공간로 하여금 강의실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다. 공간에 벽을 세우고 구획을 나눔으로써, 의미 부여를 용이하게 만들고, 이에 따라 정말로의미가 재생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지극히 자의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쉽게 생각해보자, 안과 밖의 구분은 누가 만들었는가? 우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가? 아니면 그저 문이라 불리는 나무판을 밀고 두어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가?(이영도 단편 소설집 오버 더 호라이즌골렘챕터)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정해놓고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안과 밖의 인식 체계가 우리를 다시 제약하는 것이다

Posted by 미노하
 삶에서는 많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쓸까 아니면 그냥 쓰다가 졸리면 잘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온다. 그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혹자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순수한 의미로서의 자유의지는 절대로 침범당하지 않는다고. 틀렸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분명히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심지어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사회의 영향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그대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필자라면 먼저 도구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도구가 없는 곳에서의 인간(이것을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과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어떤 언어로’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회의 영향력이다. 이렇듯, 개인은 분명히 사회의 영향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회 안에서 주어지는 선택의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가?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사회가 우리에게 허락하는 경로는, 엄청나게 많다. 정말 이것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 것마저 사회는 우리에게 허락한다. 군중심리? 다른 사람이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길인데 선택해도 되느냐고? 그렇다면 그대가 ‘허락’하는 1인이 되면 그것을 따라오는 이는 많다. 여담이지만, 불행하게도 필자는 ‘허락’받는 2인자의 길을 걷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을 한 일이라면,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란 정말 특이한 공간이었다. 그전까지 이루어지던 수많은 인간관계와는 다른, 정말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공간이었다.

 하지만, 난 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고등학교라는 넓은 세상으로 내어 쫓긴 나였다. 그러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어쩌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이 동아리였다. 운 좋게도, 알고 지내던 형이 ‘에클레시아’ 라는 기독교 동아리에 있어서 그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날 이끌어 준 것이 우리 ‘기독동아리 연합’ 이라는 소속감 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공식적인 집단 안에서, 그러한 소속감은 나의 길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나 자신만의 틀 안에서만 살아가던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에클레시아 안에서 나는 영상(미디어)팀에 있었다. 사진과 영상의 촬영에서부터, 편집까지를 담당했다. 예배 때 카메라를 잡고 있는 것은 거의 다 우리였다.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고, 그만 내려놓고 싶었던 적은 셀 수도 없었다. 성적이 떨어진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었고, 다칠 뻔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나는 성장했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각의 크기와 신앙심까지, 얻은 것이 더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큰 선택은, 역시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몇 년 여간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독서. 정말 우연하게 들은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현재에 충실해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추천했다. 그 때부터 나는 독서를 취미로 삼았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일주일에 한권 정도. 그것도 고등학생 수준의 책이 아닌,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는 책들이었다(물론 그 책들이 교재로 쓰인다는 사실은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고등학교 2, 3학년 시절동안 약 80여권. 순수하게 재미로 읽었던 가벼운 책(판타지, 현대소설 등)을 합하면 약 4~5백 권 정도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고3 시절에는 공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열심을 다해서 했던 것 같다. 디데이 100일부터 보았던 영화가 약 70편에, 드라마가 약 20시즌 정도를 보았으니...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배경 지식이 되어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당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놈’ 으로 보았다. 상식적으로,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이라면 문제집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정말 그 해의 내 수능 점수는 ‘평소처럼’ 나왔다. 당시의 내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은 ‘재수’였다. 우리 때의 수능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08학번의 수능이었다. 나와 같은 재수의 길을 선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나는 그 곳에서도, 꿈을 좇고 있었다. 나의 꿈 또한 조금 특이했다.

 나는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이라서 쓰는 가식적인 말이 아니다. 난 진짜로 사회학이 하고 싶었다. 사회학의 길을 선택한 경로조차도 그리 평범하진 않았다. 사회학을 처음 생각했던 때는, 하나님(필자는 개신교도이다)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것은 고1 여름 수련회 때였다. 중 3때까지는 안티크리스천에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얼결에 지원하게 된 기독동아리에서 큰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존재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자에게 이렇게 열심히 기도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수련회 때 저녁 부흥회 시간에, 저는 정말 우연히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질감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 때 ‘나도 한번 따라 해 보자’라고 생각했고, 주님을 만났다. 처음 든 생각은 무엇보다도, 그 감격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게다가 믿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죽어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그들이 생각났다. 중국(그 수련회의 주제였다)과 아프리카. 그 곳에서 베토벤이, 셰익스피어가, 칸트가, 단지 그 곳에 태어났단 이유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가진 꿈은, ‘지원해 주자’가 아닌 ‘한 번 바꾸어 보자’였다. 그때부터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재수생으로서의 할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사람이 하루에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 쉬는 시간을 빼고 남은 모든 시간을 공부에 ‘부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의외의 결과였다. 정말 내 하찮은 머리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점수가 나왔다. 그 때 나는 사회학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아마 그 당시에는 내 꿈보다 돈을 더 쫓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전공이 ‘경제학’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것. 학교를 선택하던 순간에는 몰랐지만, 대학에 와서 정말 ‘넓게’ 배우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해 주었던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고등학교 일을 도와주면서였다. 배재고등학교에서 하는 ‘아펜젤러의 두 번째 기도’ 라는 집회가 있다. 형식은 항상 바뀌지만, 그래도 매년 반복되는 ‘뮤지컬’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거기서 09년의 나는 뮤지컬을 도와주게 되었다. 

 어느 날, 동아리 OB(졸업생) 모임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갔다. 그래서 들은 말이 “너 뮤지컬 대본 좀 써라” 라는 말이었다. 사실, 적성에도 맞지 않던 공부에 지쳐가던 나는, 그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본 쓰기에서 끝나지 않고, 뮤지컬의 감독을 맡았다. 물론, 말이 감독이지 발성훈련, 호흡훈련, 연기지도, 안무 짜기, 당일 촬영과 보컬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가능성들을 보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보았고, 내가 가졌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냈다. 

 그 때 선택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친 짓이 될지도 모르는 선택이, 다시 한 번 수능을 보는 것이었다. 정말, 절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제학을 배운 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경제학 성적은 C+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때의 상황에서는 아무도 내 생각에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고민했던 것은 배부른 현실과 배고픈 꿈 사이의 중간점을 찾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최소한 나의 기준에서, 사회학은 원래 전공하던 학문보다는 훨씬 ‘배고픈’ 학문이었다. 그때 내가 전공하려던 것이 경제학과 응용통계학의 복수 전공이었으니까, 아마 절대로 굶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학을 하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듣는 말은 “그게 뭐야?”였다.

 그 때, 내가 사회학을 할 만한 용기를 가지게 해 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그 분의 전공이 사회학이었고, 그래서 난 사회학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말했지만, 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잘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 분마저도 내가 다시 수능을 보겠다는 말에 그냥 ‘응원’ 만을 해 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래! 너라면 잘할 거야~!” 라고 하던 얼굴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나름 잘 해냈다는 것. 그래도 재수 때만큼의 성적을 유지해내는 것은 성공했다. 물론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그 중요한, 학교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학교를 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나는 그런 ‘전도유망한’ 학교를 가서 ‘편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처음부터 보았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힘들게’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나는 서강대학교에 진학했다. 더 좋아 보이는 길들이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방법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곳 로욜라 도서관에 있고, 이 글을 쓰면서 잠을 깨려고 별의별 스트레칭을 다 하고 있고, 이 글을 어느 정도 쓰다가 엎드려서 한숨 잘 계획이다. 그 후에 잠이 깨면 기지개를 펴고 다음 수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선택 몇 가지가 있다. 지난 2월 한 달간 했던 일들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신입생들에게 2월은 바쁜 달이다. 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학교와 집을 오가고, OT와 입학식, 신입생환영회 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알아가야 할 시기였다. 그리고 난 그때, 연애를 택했다. 정말 짧은 기간 동안의 연애였지만 그래도 나는 절대 그 일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수강신청이나, FA제도 같은 것은 혼자서도 배울 수 있었고(이건 진심이다, 어차피 학교별로 큰 차이는 없으니까) 주된 수강과목도 다른 1학년들과 겹치는 수업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수강신청기간에 교회 수련회에 있었다. 나에게 교회 수련회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고1때의 여름 교회 수련회 때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 한 번의 수련회가 나에겐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을 하는 시간대(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녁8시부터 12시였다)또한 예배시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즉, 교양과목은 한 개도 신청하지 못했다. 내가 수강신청을 했던 시간은 다음날 수강정정기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최종적으로 신청한 과목은 이렇다. 사회학개론, 사회조사방법론, 사회학사, 정치학개론, 일반심리학, 인류학개론.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1학년이다. 위의 목록에서, 필자 혼자 1학년으로서 수업을 듣는 것이 3개정도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사실이다. 나의 인생 중, 2년의 황금기를 멀리 돌아오고 나서야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기에 즐겁게 행할 수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지금 이 글은 며칠간 쓴 것이기에 문체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을 주로 쓰는 공간은 로욜라 2관 4층 노트북 사용가능 테이블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곳은 우리 집 거실 바닥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다. 이 큼지막한 노트북을 꺼내는 것 자체가 속된말로 ‘쪽팔린’ 일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지하철에서 잠이 오지 않고, 읽을 만한 책을 챙겨오지 않았다면, 글이라도 쓰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한 번의 여담이지만, 사회학 한다는 놈이 이렇게 사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서야...

 지금까지 이 글을 쓰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정말 고등학교 이후의 나의 삶은 ‘내 멋대로 살았다’ 라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최근에 겪었던 많은 일들을 보면 말한다, “넌 왜 이리 인생에 굴곡이 많아?” 라고들. 내가 굴곡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꿈을 좇기에는 충분히 험난한 곳이다. 그런 험난한 곳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라면 그래도 잘 산 인생이 아닐까?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회에 속해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추천하는 수많은 길들이 있다. 선택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몇 개의 길이 있다. 나는 그 중에, 한 번도 추천받지 못했던, 한 개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번. 그래서 나온 결과는, 항상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많은 길들이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에 만족한다. 그렇지 못한 삶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타카’ 라는 영화가 있다. 유전자로 인한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그리는 영화이다. 지금도 가끔, 너무 하루하루가 힘들다 느껴지면 그 영화를 본다. 주인공은 “실패를 생각했다면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었어.” 라고 절규한다. 숨이 전혀 차지 않는 것처럼 달리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 듯이 숨을 쉰다. 심장마비에 걸려 이미 죽었어야 하는 심장으로 그 누구보다도 오래 달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경쟁들을 하나하나 승리해 나간다. 

 과연, 실패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실패라 규정지어야 하는가? 물론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회의 규범을 벗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많은 ‘틀’ 들이 과연 우리가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인가? 막스 베버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성의 쇠장 iron cage 안에 갇혀 살아간다고. 난 지금 이성의 틀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이성의 틀을 조금만 넓히는 것이다. 실패해도 좋다. 아니, 십중팔구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한둘은 성공하지 않는가? 그 한두 가지의 성공이,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루었지 않는가?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이,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이다.

 니체는 ‘적극적 허무주의’ 에 대하여 말했다. 이성으로 인하여 절망적인 사회에서, 시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번 더 해보라 말한다. 그가 비이성적인 사람인가? 그는 단지 그 절망적인 상황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희망을 볼’ 뿐이다.

 지금의 사회는, 충분히 과거보다는 좋아진 사회이다. 충분히 열려 있는 사회이다. 충분히 원하는 꿈을 좇을 수 있는 사회이다. 과거에는 꿈을 좇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위대한 업적들은 과거에 많고 많게도 쌓여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무엇인가?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아니, 실패 그 자체가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실패했다고 다시 한 번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저 실패자일 뿐이다. 다시 한 번 시도할 때, 그는 ‘도전하는 자’ 이다. 그리고 나는, ‘도전하는 자’ 이다.
Posted by 미노하

봄이 왔다기엔 아직 추웠던

그래도 강의실 안에선 따뜻했던

졸음 넘치는 시선들에 서 있던

답은커녕 질문조차 얻지 못했던

수그러진 고개 아래를 살피던

바람은 날개를 접었다.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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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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