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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4 0401 보이스포럼
  2. 2011.07.09 인류학개론 현지조사

아 혹시 인류학개론 들으신 분 있나요? 그럼 말이 편해지는데.. 없나요? 그냥 제가 설명할게요. 인간에게는 무언가를 설명하고자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비는 왜 옵니까? 그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설명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고대에는 이런 과학적인 이론들을 아마 몰랐겠죠. 그래서 뭐.. 요정이 했다거나? 뭐 그런 설명들을 했겠죠. 바로 이거에요, 설명. 힌두 신화였나? 아무튼 거기에 이런 게 있어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거대한 거북 위에 있다고. 누가 묻죠, 그럼 그 밑에는? 그래서 대답해요, 그 밑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고. 하지만 그 밑에의 밑에의 밑에는? 모르죠. 그 때 무한의 개념이 생겨납니다. 무한히 거대한 바위 위에 작은(우리에게는 세계이지만) 거북 한 마리가 있고, 그 위에 우리들이 살고 있다고 말이죠. , 이 때 무한대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창세기, 혹은 태초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베레시트와 정확히 동일한 이치죠. 사실, 아직도 창조론이 창조과학이라는 미명하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논리는 이것입니다. 모든 것의 시작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과연, 우리는 스스로 존재했던 자들인가? 그럼, 이 모든 물질들의 태초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는가? 아 여기서 원래 '이집트 왕자' 장면 가져와야하는데.. 뭐 어쨌든? 이것은 하나님과 모세와의 만남 장면입니다. 모세는 불꽃을 향해 물었죠, 당신은 누구냐고. 기독교의 신은 말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who I am” ,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창조하였고,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 됐다는 것이죠.

빅뱅이론을 설명해볼게요.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물리학 지식이 필요합니다만.. 그냥 들으세요 뭐. 우주는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도플러 이론 정도는 아시죠? 그 기차 같은 거 지나갈 때 슈웅 하고 소리의 주파수가 바뀌는 거. 원리는 단순해요. 관측자에게로 다가오면서 생겨나는 음파는 주파수대가 점점 높아지고, 멀어질수록 주파수대는 낮아집니다. 여기서 주파수란, 파장의 진동수를 말하는 것쯤은 다 아시죠? 이러한 주파수의 변동 현상이, 우주에 있는 별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일단 먼저, 빛은 파장의 성질을 가진 물질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갈게요. 어쨌든, 대략 50년 전쯤에 관측한 별빛의 주파수와 현재 관측하는 별빛의 주파수가 다른 것이 계속 관찰되고 있으니까요.

현재는 이렇게 우주가 계속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볼게요. 지금은 확장하는 우주니까, 축소하는 우주로 바꿔서요. 아주 오래 전으로 돌아가면, 그니까 우주가 전혀 확장하기 이전, 우주의 모든 물질들이 하나의 이라 말할 정도로 작은 공간 안에 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우주의 태초에는, 우주 전체라는 엄청난 질량(혹은 에너지) 가 그런 작은 공간 안에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 질량들의 균형이 무너지는사건이 일어나요. 그 때, 물질과 반물질이 떨어져 나가요. 그렇게 균형이 깨지며 동시에 대폭발, 즉 빅뱅이 일어납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조화의 방법으로 등장한 이론들에는, 유신진화론, 지적설계론, 젊은 지구 창조론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의 대부분은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죠.

먼저 유신진화론이란 최초의 빅뱅 자체에 신의 의지가 개입하였고, 그 후의 진화의 모든 형태가 신의 뜻대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이는 가톨릭교회 쪽에서 공식적으로인정하고 있으며, 그나마 가장 무난한 창조과학의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은 그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이 아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에 의해서도 될 수 있겠죠?

다음으로 지적설계론 이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너무나 정교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설계자가 존재하였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최신의 창조과학 쪽에서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지구 창조론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구의 역사는 대략 5,000 년 정도인데 반해, 지질학 쪽에서 이야기하는 지구의 역사는 45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독교, 그것도 개신교입니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말이죠.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창조과학이란, 그저 졸렬한 타협의 한 방법에 불과합니다. 먼저 생각해봅시다, 과학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하는 과학이란, 보편적인 증명이 가능한 이론들의 총합입니다. 그리고 창조론은,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하고, 또 그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창조론과 진화론의 조화는 가능할까요? 이에 대한 제 대답은, 공존은 가능하되 조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개신교에는 가톨릭과는 다른 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루터가 주장했던 다섯 솔라 입니다만, 그 중에 한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Sola Gratia. 오직 은혜라는 말인데요, 이 말인즉슨 모든 것은 은혜가 아니면 알 수 없다는 것이죠. 신의 존재는 물론, 그분이 하신 모든 일까지 말이죠. 창조에 대한 것은 당연히 포함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조론은 '믿는' 것이며, 창조과학은' 알고자 하는 시도' 입니다. 그런데 개신교의 신앙에서는 'sola gratia' 라 말합니다. , 은혜가 없이는 알 수조차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심지어, 창조과학은 과학적 합리성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인지부조화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패러다임이요? 그들에게 창조과학이란, 신앙입니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평행선입니다. 절대 만날 리 없는 것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충돌할 이유도, 서로에 간섭할 권리도 없습니다. 창조론은 지식이 아니며, 진화론은 신앙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렇기에 동시에, 이런 젓가락과도 같습니다. 혼자서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기에, 서로 충돌하면서도 함께 존재해야 하는 것이죠.

자 이제 한국 기독교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한국의 개략적인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국이 독립한 직후, 남한의 경우 미국의 영향력이 막대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미국은 친일파 출신 정치인에 대한 지원과 함께 과거 독립 운동가 세력에 대한 배제의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시절, 대부분의 독립 운동가들이 진보적인 사상이나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임시정부가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경우는 크게 두 종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사참배를 허용했던 통합 측과,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고려신학교(이하 고신) 측이 그 큰 두 개의 줄기입니다. 여담으로, 현재는 고신과 통합, 합동측이 더해져 3개가 기독교장로회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분파는 많은 탄압을 받았고 세력이 많이 약해진 상황에서 광복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친일에 협력하여 살아남은 기독교 분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반성하지 못한 상태로 군부정권을 맞았고, 그 권위주의적 정권에 종교적인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이릅니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혹은 디도서 31,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라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사회 참여를 통해 권위주의적 정부에 반대하는 이들을 사탄의 유혹을 받은 자들로 매도하는 상황까지 이릅니다. 심지어 바로 다음 디도서 32절에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라는 말로써 '건전한 비판'마저 '비방'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는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까지 이어지는 독재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직,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형교회들의 성장주의 정책이 어우러져 개신교 교회들의 급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정치적 관점에서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왜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우세를 보이는지 알고 싶다면, 왜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 이건 수구 사상인가요?)가 강한지에 알면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주의는 매카시즘을 방불케 하는 반공 사상으로 인하여 더욱 강해졌고, 그에 대해 종교적 뒷받침을 해 준 기독교는 성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 그럼 거시적인 관점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사실 여기서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 하나 존재합니다. 이는 외래종교로서의 기독교가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 문화와 융화된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융화된 형태를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 복을 받기 위해서 신을 믿는다... 뭐 이런 것을 말합니다. 이것의 대표적인 예는, 역시나 수능 날 교회에서 하는 기도회가 있겠습니다.

이러한 기복신앙의 형태로 한국 사회에 스며든 기독교는, 구한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소외 계층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사회 불안 요소들에 대해 비판함과 동시에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는 기능까지 수행한 것입니다. 한 번 더 여담이지만, 기독교는 절대로 기복신앙의 종교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정보를 밝히자면, 저는 개신교에 속해 있는 크리스천입니다. 명성교회를 다니고 있으며, 저희 가족이 다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명 모태 신앙이라 하여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닌 경우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는 명성교회입니다. 한국에 있는 많은 대형교회중의 하나이고, 정치적으로 보수 색을 많이 드러내는 분위기입니다. 이것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성경에 대한 지극이 자의적인 해석과 거의 이기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정도의 성장주의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로서 가져야 하는 초기의 신앙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이미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열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곳에 있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신앙과의 연관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sola gratia입니다. 자 그럼, 질문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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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노하
서문

 고등학교,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 있을 만한 문화적 기억이다. 그 곳에 있었을 때, 우리들은 모두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의 마지막 시절, 회광반조와도 같은 반짝임으로 고등학교의 3년을 보냈다. 1318이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사회학자들은 보통 이 시기를 십대teenage 라 말한다. 중고등학교의 6년간이 정말 ‘십대다운 십대’ 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지금, 그 십대의 시절을 다시 뒤돌아보며, 지금 그 시기를 걷는 이들과, 그 시기를 함께 걸으며 그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어른들과, 그 시기를 추억하는 이들과 함께, 그 시절을 다시 한 번 걸어 보기로 했다. 그런 생각에서 만들어 낸 인터뷰 대상자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동기동창이자 오타쿠 집단 내에 있던 친구 A. 
2. 오타쿠 집단과 관계없던 친구 B. 
3. 현재 고등학교 재학 중인 후배 C. 
4. 현재 고등학교 교사인 D. 
 일단 필자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하려고 한다. 필자는 배재중 배재고를 나왔다. 즉, 얼마 남지 않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기는, 남중-남고 라인이다. 여담이지만, 국사교과서에도 나오는 우리 학교 건물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매점’ 건물이다. 어쨌든, 나와 함께 그 남중-남고를 보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다.
 십대의 시기는 또래 집단을 만드는 시기이다. 절대로 자연스러운 또래 집단만으로는 정말 제대로 논 사람이 아니다. 필자는 그것을 후회하며, 그렇게 ‘놀았던’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로써 특정 담론에 대한 지식을 얻기로 했다. 
 특히 필자가 관심을 가지는 집단은, 어느 반에나 있다는 ‘오타쿠 집단’에 관한 이야기이다. 반에 몇 명씩 있고, 저들끼리 몰려다니며, 알 수 없는 말로 떠들며, 전혀 삶과는 관계없는 것에 열광하는 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필자가 이것을 주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별로 자랑할 것은 못되지만, 필자도 이 집단에 발을 어느 정도는 걸치고 있었고, 이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고등학교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주된 이야기는 ‘과연, 또래 집단으로서의, 오타쿠란 무엇인가’ 이다. 어떤 특정한 가설에 대한 증명이 아니라 단순히 오타쿠 문화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들만의 특정한 사고방식과 문화 구조, 용어 등에 대해서 조사하기로 하였다. 

1. 오타쿠 안에서 보는 오타쿠-너네, 대체 정체가 뭐냐?

 그림을 첨부한다. 이 그림을 보고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텔레비전 색 테스트인가?” 또는 “바코드 같은데?”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마니아 혹은 오타쿠라면 할 수 있는 외침은 “하루히!” 일 것이다. 혹은 “스즈미야!” 라고 할 수도 있다. 뭐, 똑같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을 그린 색들을 적당히 조합하여 만든 그림이다. 참고로, 그림 밑에는 “이 사진을 이해하는 것은 당신이 오타쿠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라고 적혀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필자는 이것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친구들은 이 그림을 알아보며 스스로 좌절했다(“내가 오타쿠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오타쿠라니!”). 
 가장 먼저, 오타쿠란 무엇인가? 오타쿠란 용어가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sf 동호회가 등장하던 시기의, 초기의 동호회 문화였다. 오타쿠란 お宅 를 한글로 읽은 발음이다. ‘오 お’는 경어 자격의 접미사이며 ‘타쿠 宅’란 ‘댁’이란 뜻이다. 보통 우리도 쓰는 말로서, “댁은 어떠신가요?” 할 때의 그 ‘댁’ 이라는 말이다. ‘당신’이라는 말은 ‘아나타あなた’ 이지만, 그것을 극존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오타쿠お宅 라는 말이다. 마니아들끼리 만났을 때 서로를 지칭하는 말로써 오타쿠라는 말을 사용하였던 것이 고유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최근에는, 그러한 오타쿠들의 세대를 나누어 1~3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1세대 오타쿠란, 오타쿠란 말이 생기기도 전부터 마니아였던 자들로서, 현재는 2, 3세대를 주된 소비자로 하여 ‘먹고 사는 오타쿠’를 칭할 수 있다. 현재의 반다이, 가이낙스 등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사람들이 이에 속한다. 참고로, 미야자키 하야오도 오타쿠라 볼 수 있다. 1세대 오타쿠들의 명언이 여기서는 통할 수 있었다. “마니아가 세상으로 만화를 보는 사람이라면 오타쿠는 만화로 세상을 보는 이들이다.” 라는 명언이 통하는 유일한 세대이다.
 2세대는 후발 오타쿠라 할 수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등의 산업에서 일을 하며 먹고 살기는 하지만, 거장은 되지 못한 이들을 칭하여 2세대 오타쿠라 한다. 여기까지는 무난한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문제가 되며, 한국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3세대 오타쿠이다. 이들까지 오면 더 이상 お宅라는 경어체를 사용하지 않으며, オタク라고 가타카나로 적는다. 즉, 고유명사화 된 것이다.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으며, 신기하게 생각하고, 때로는 경멸하기까지 하는 오타쿠들은 주로 이들을 지칭한다. 현재 일본에서도 이것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오타쿠들 스스로는 오타쿠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부분의 경우는, 자신들을 오타쿠라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그 오타쿠라는 어감에 담긴 필연적인 ‘경멸적’ 뉘앙스 덕분인지 그냥 오타쿠처럼 생겼으면 ‘야 이 오타쿠야’ 하는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옆의 그림이 ‘오타쿠’ 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의미지의 대표라 할 수 있다.

2. 오타쿠 밖에서 보는 오타쿠-왜 그들을 싫어하는가?

 그렇다면, 한국에서의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는 어떠한가? 먼저, ‘민간인’ 이라 할 만한 이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애니’였다. (기타 화성인 바이러스, 더럽다(!!), 안경, 변태 등이 나왔지만 그것은 일단 접어 두자) 
 왜 하필이면 ‘애니’인가? 왜 만화 영화가 아닌가? 필자도 그러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만화 영화를 보면서 자라왔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카드캡터 체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것을 보면서 좋아하는 오타쿠들은 많이 있다. 다만 그것을 카드캡터 사쿠라 라고 부르는 것이 다를 뿐. 그래서 지금의 오타쿠들이 향유하는 영상물들은 똑같은 만화 영화가 아니라고 ‘구별 짓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구별 지어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오타쿠들에 대해서는 좋은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는 것이 우리 한국 사회이다. 그들은 소수자임과 동시에 사회적 영향력(권력이라 칭할만한)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자신들이 향유했던, 아름다운 추억이여야 할, 문화가 동등하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종의 ‘구별짓기를 통한 정체성 형성’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현 오타쿠들에 대한 낙인찍기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슬프게도, 사실이 그렇다. 그들은 아무리 봐도 소수자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몇몇의 특이한 사람들이 매체를 통하여 알려진 덕분에(화성인 바이러스 등의 TV 프로그램) 오타쿠들에 대한 인식은 더할 나위 없이 나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이 외양 자체가 나쁘기 마련이다. 취미에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생활마저 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보통 [안경+여드름+돼지] 인 경우 '안여돼' 라 하여 오타쿠와 동일시한다). 물론 오타쿠들 중에도 유명한(혹은 사회적 위치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은 많다. 예를 들어, 아소 타로 총리, 무카이야 미노루, 연예인 이시영 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소수이다.
 현재 일명 ‘오타쿠 산업’을 이끄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아르바이트나 부모님의 용돈 등에 의존하여 사는 사람들이다. 즉, 칭찬하려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성격에 혼자서 딴나라에 사는 듯한 대화 등은 도저히 그들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타쿠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지게 되는 계기는, 그들의 피규어 수집 버릇에 대해 알게 된 이후이다. 피규어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의 주인공들을 장난감으로 만들어서 파는 것인데, 주된 소비자층이 아이들이 아닌 오타쿠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상적인 것을 만들어 판다고 해도 거부감이 드는 것이 정상인데, 많은 문화가 그러하듯이 이것도 많은 제품들이 속칭 ‘변태적인’ 쪽으로 흘러가게 된다. 관련사진은 대부분 수위가 너무 높으므로 생략한다.
 게다가 게임 쪽도 많은 작품이 성인물 쪽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줄여서, 미연시)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미연시란, 말 그대로 연애의 과정시뮬레이션 게임으로 플레이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했던 남성이라면, 대부분 ‘투하트’ 나 ‘동급생’등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타쿠들도 이러한 작품들은 ‘명작’ 반열에 올려두고 한번씩은 플레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분야도, 상업주의적 성 문화의 손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아니, 사실 이 분야가 주된 성인 문화의 무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타쿠들의 이야기지만. 최근의 미연시 중에서는 19금 딱지를 떼고 나오는 작품을 거의 찾기 힘든 상황이다.
 다른 것은 다 이해하겠지만, 피규어 수집이나 미연시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오타쿠들의 심정은 필자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주관성’ 을 버리지 못하겠으므로 생략한다. 

3. 일반인 코스프레? 너도 오타쿠!

 그래서 심지어 최근에는, 아무리 봐도 오타쿠로 보이는 이들마저 자신들은 오타쿠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오타쿠라는 말 마저 그 강한 어감을 약간씩 순화시켜 사용한다. [오타쿠->오덕후->덕후] 의 순서가 그 대략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요즘에는 어느 정도 인터넷을 한다는 사람끼리는 오타쿠인지 아닌지 구별이 힘들어 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 중에도 충분히 지식인층이 등장해서 스스로를 잘 ‘감추고’있는 편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일반인 코스프레’라 하여 따로 설명하겠다. 여담이지만, 최근에는 ‘덕후’에 대한 비하적인 말로서 ‘십덕후’ 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오타쿠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용어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일반인 코스프레’ 이다. 코스프레란, 오타쿠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것을 말한다. Costume Play 를 일본어로 줄여서 コスプレ(코스프레)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 코스프레란? 이는 실제로는 오타쿠인 사람들이 일반인인 척 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아이돌 가수 팬들이 일상 생활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사는 것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이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과 같은) 줄여서 ‘일코해제’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오타쿠라고 불리며 경멸당하지 않는다. 이들은 일명 ‘용자’ 라 불리며 칭송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은 이미 사회적 기반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오타쿠 인증(증명)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할 만한 용기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도 “취향이니 존중해 주자”라고 할 만한 위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취향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언제나 나오는 오타쿠들의 명언으로서,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가 있다. 이것의 출처는 디시인사이드 무협, 판타지 갤러리(당시에는 하나였다)와 타입문넷과의 싸움에서 한 일본 판타지 소설 오타쿠가 사용했던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들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싸움들이 어떠한 형태로 진행되었는지는, ‘그들’이 아닌 이상 이해하기 힘든 범주이다. 
 “너희들도 무언가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도 우리의 취향이 있을 뿐.” 이라고 오타쿠들은 말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축구를 예로 들어 보자. 보통의 남학생들이라면 유럽 축구에 매우 관심이 많다. 바르셀로나, 맨유, 레알 마드리드, etc. 뭐 이런 것 있지 않는가? 그런데 그들은 그 팀별 선수들 목록을 다 외운다. 정말 다 외운다. 심지어는 나이와 경기 스타일, 출신 국가까지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오타쿠들이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좋아하는 만큼 축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4. 오타쿠들이 모이는 곳-온라인, 오프라인

 우리가 주로 모였던 때는 역시나 고등학생답게 쉬는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에 어느 한 반에 모인다. 장소는 일반적으로 무리 중에 속한 사람이 가장 많았던 반으로 암묵적으로 정해진다. 그 사람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더욱 좋다. 또 다른 모임의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주로 도서실에 모여 잡담을 나눈다. 그 곳이 모임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컴퓨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타쿠의 활동은, 대부분의 경우 컴퓨터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이기에 누군가 노트북을 가져온다든지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오타쿠들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공간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디시인사이드 : 그저 성지(聖地)이다. 거의 모든 분야의 오타쿠들이 모인다. 그 분야는 철학에서 정치, 디카, 컴퓨터, 애니, 게임, 물리학, 연예인까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분야는 다 있다고 봐도 된다. 최근에 사용하는 대부분의 인터넷 은어들은 여기서 탄생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채널 : 일본의 익명게시판이지만 현재 한국어 번역이 연계되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일본의 디시(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존재. 여담이지만, 2ch(2채널) 과 디시는 앙숙관계.
웃긴대학 : 유머 사이트. 보통 고등학생 이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필자와 인터뷰했던 이들도 이곳은 잘 알지 못했으므로 생략.
엔젤하이로 : 사이트 운영자인 “함장” 이 만든 개인홈페이지. 엔하위키라는 백과사전을 운영중이다. 위키백과와 속성은 동일하지만 주로 서브컬쳐(오타쿠 문화, 정치관련 뒷담 등)를 다룬다.
 이외에도 온라인 공간으로 이글루, 타입문넷, 루리웹 등이 있으나 그곳은 필자같은 사람이 접하기엔 너무 위험한(!!) 곳이므로 조사하지 않았다. 루리웹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비디오 게임 정보’ 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는 들었다.
 또한, 오프라인 공간으로도 몇 가지가 있다. 대표적인 것만 소개한다. 
지스타(G-Star, G★) : 컴퓨터 게임 전시회. 게임 오타쿠들이 많이 출몰한다. 
코믹월드 : 대한민국 오타쿠들의 총집결지. 서울과 부산에서 이루어지며, ‘코믹’ 이라 줄여 부른다. 동인지 판매와 코스프레 등이 이루어진다. 일본어노래 부르기 같은 이벤트도 많이 있는듯.
KOBA : 방송, 영상, 음향, 조명기기 등을 전시하는 박람회. ‘방송부’ 같은 동아리의 학생들이 가면 그저 행복한 곳. ‘행사’ 와 관련된 기계류는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사진영상 기자재전 : 사진 및 영상과 관련된 장비를 전시한다. 브랜드별 최신 제품을 직접 만져볼 수 있다. KOBA 와 성격이 비슷한듯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5. 결론

 이디오진크라지 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에 대해 동물적인 본성으로 싫어하는 것으로써, 문명화된 현대인에게도 남아있는 무조건반사 같은 것이다. 반유대주의라는 광기는 계몽이라는 합리성이 빚어낸 이디오진크라지이다.
 이와 같이, 알 수 없는 타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배제하려 하며, 그것을 증오하기까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는 일종의 ‘생존본능’ 이다. 즉 우리가 오타쿠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그들을 싫어하고, 배척하고, 공격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오타쿠들도 사람들이 자신들을 싫어하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인 척(일반인 코스프레)을 하며 살아간다.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오타쿠는 그 중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 들이 현실의 ‘매니아층(혹은 오타쿠)’과 겹친다고 해서, 실제 오타쿠들의 다수가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이건 진짜다). 현실의 오타쿠들은, 대부분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소수만이 좋아하는 문화를 향유할 뿐이다.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들도 각자의 취향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취향이 매우 마이너한 취향이고, 외부인이 접근하기에는 무언가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게다가 그들은 사고 구조 자체가 많이 다른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싫어하려면 먼저 그들에 대해 안 이후에 하자. 무턱대고 싫어하는 건 ‘이디오진크라지’ 일 뿐이다. 
 요즘 생겨나는 많은 오타쿠 관련으로서는 밀덕후(밀리터리 오타쿠), 소덕후(소녀시대 오타쿠), 겜덕후(게임 오타쿠, 겜타쿠라고도 함) 등, 많은 분야들이 있다. 심지어 학문 덕후나 종교 덕후라는 말도 등장한다. 위(1장)에서 말했듯이 “오타쿠란, お宅(おたく). '당신', '댁'이라는 뜻을 지닌 이인칭 대명사로 쓰이는 일본어이다. 그렇다. 당신이다!”

후기

 필자는 이 주제를 “오타쿠 문화 하면 그래봤자 서브컬쳐 문화에 불과하겠거니...” 해서 그냥 쉬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문화라는 것은 절대로 그 현상 자체만을 연구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그 맥락과 사고방식 속에서의 이해까지가 성립되지 않으면, 그저 또 하나의 편견에 불과한 것이다. 
 연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터뷰 대상자들의 반응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오타쿠라는 집단에 대해서 거부감을 나타내었다. 심지어 오타쿠라고 생각해서 접근하여 오타쿠들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조차, 그것을 모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대한 이해는 위에 모두 적어 두었다.
Posted by 미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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