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Do immigrants threaten the national culture and identity? 란 질문에 대해 답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일 것이다. 이것은 절대로 동정심이나 통계학적 의미로써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집단 내부의 다양성은 증가한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성은, 물론 이전의 그 무엇과는 다를 것이다. 쉽게 생각하자, 변화는 변화를 부른다. 큰 변화에서 작은 변화이든, 작은 변화에서 큰 변화이든. 이주자들의 수는 분명 증가하고 있다. 또한, 그들에 대한 문화의 변화도(외형적이든 내형적이든)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인식은 어떠한가?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갑자기 어떤 외국인이(흑인이나 짙은 황인 계열의) 길을 물어오는데, 자신이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런 상황에서의 가장 적절한 반응은 무엇이겠는가? 물론 자신이 아는 언어(한국어나 혹은 영어라도)라면 친절하게 답을 해 줄 것이다. 하지만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이 사람들의 가장 적절한 반응은, ‘도망일 것이다. 이것은 잘못이 아니다. 단지 두려움에 기인한,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응은 두려움이 가장 보편적이다. 물론 그러한 감정을 즐기는 많은 모험심 넘치는사람들이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그들은 많은 소수중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적은 다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무지에 대한 공포는 기본적인 생존관념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그러한 행동을 백안시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그것을 집단적인 공포로 확대하여 하나의 진실이며 순리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문제일 것이다. 이에 대한 예시는, 조금만 과거로 올라가서 2차 대전 시기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당시 독일의 경우, 1차 대전 패배의 경험과 그로 인한 배상금 등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엄청난 부담감을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려한 영광의 시절은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으며, 의견 통일은커녕 국가 관념조차 생겨나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삶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히틀러라는 영웅이 등장하였고, 괴벨스의 언어를 통하여 대중을 휘어잡았다. , 난세의 영웅이 된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일어날 만한 원동력이 필요하였다. 꼭 실제적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민족이었다. “아리안족은 위대하다.” 라는 명제는 꼭 증명될 필요가 없었다. 민족이 실재하는가? 알 필요 없다. 그들을 위대하지 않게만든 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그것은 유대인이었고, 3세계에 대한 착취를 통해 힘을 키운 타 유럽 민족들이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은 목표 의식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그런 일은 매우 쉽게 일어난다. 대중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것은 100%의 진리가 아닌, 1%의 진실이니까. 그들에게는 단지 적이 필요했고, 그 훌륭한 대상으로서 선택된 것이 언제나 유럽인의 적이었던유대인이었을 뿐이다.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에는 재앙만이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이디오진크라지 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에 대해 동물적인 본성으로 싫어하는 것으로써, 문명화된 현대인에게도 남아있는 무조건반사 같은 것이다. 반유대주의라는 광기는 계몽이라는 합리성이 빚어낸 이디오진크라지이다.

주체의 타자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적대감은 서구 사회에서조차 사라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을 타자로 분류해 버릴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나 첫 번째 이유는 다르다라는 것이다. 그 다름 이라는 것이 주체를 두렵게 만든다. 그러한 두려움은 인간의 자기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자신을 두렵게 하는 것을 제거하려는 욕구를 지니게 만든다. , 공격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주체와 타자는 극명하게나뉘고 주체는 다시 안심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은 과연 실재하는가? 민족이라는 관념은, 단지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자본가들의 필요성에 의해 중앙집권적인 형태의 근대적 국가가 나타났고, 그러한 권력의 정당성을 민족이라는 관념에서 가져온 것이다. , 민족은 단지 개념적으로 존재하는 밈meme일 뿐이며, 실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민족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가까운 과거에 형성된 것이다.

한국은 아직도 IMF 의 상처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수많은 청년 실업자들은 표류하는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자조하며,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은커녕 주류에 편입되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청년 세대뿐만 아니라, 장년과 노년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안정감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이러한 상황들을 만들어낸 것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책임 추궁에 대해서, 언론과 대기업 등의 엘리트 집단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만한 도구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그들을 달랠 만한 당근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공격성은, 우리 주변의 많은 소수자를 향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위험하다.

이제 다시 한 번 결론을 지어 보자.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을 위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변화에 대한 공포는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위협으로 표현하며 무조건 거부하려고만 하는 것은 단지 또 다른 광기의 한 형태일 뿐이다.

과학이 계몽시킨 전근대 사회는, 다시 한 번 과학 자체가 이 되었다. 그렇게 근대는 계몽을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계몽은 일어나지 않았고, 민중은 편한 마음으로 폭력을 행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이루어지는, 통계와 이론으로 정밀하게 계산된, 폭력이었다.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 외국의 문화가 유입되고, 그로 인하여 우리의 순수성더럽혀진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협으로 느끼는 것. 그러한 생각 자체가 바로 폭력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자본의 힘이 국가의 통제력 수준을 벗어나게 된다. 그러한 상황에서,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이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문화는 사람이 옮기는 것이므로, 이주에 의한 문화 변화가 매우 클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한 현상은 멀게는 기자 조선이 그러하였고(기자조선의 존재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가깝게는 일제 강점기가 그러하였다.

그렇게 문화는 변한다. 변한다는 것이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다양성의 증가는, 분명 좋은 점이 더 많다. 그리고 그것은, 위협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이며 변동이고, 결국 그것은 어떤 면에선 기회로서 주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두려움을 기대해 본다

Posted by 미노하
 나는 지난 9월 12일 혜화동을 방문했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로’ 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고, 나도 그 이름을 유흥의 공간으로써 향유하는 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 때는 조금 달랐다. 다른지는 몰랐다, 몰라야 했다. 우리는 그 곳으로 답사를 나갔다. 그 곳에 일종에 ‘필리핀 공동체’ 가 있으며, 그들의 문화를 한번 직접 마주해보라는 것이 이유였다.
 처음 출발은 그리 순조롭지 못했다. 혜화역에 도착했을 때, 언제나처럼 익숙한 분위기만이 나를 반겼다. ‘여기서 대체 무슨 새로운 것을 느끼라는 거지?’ 라고 불평하며 나는 길을 헤매고 있었다. 결국, 길은 물어 가는 것이 정답이긴 했지만……. 동성고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 수업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들 헤맸음이 틀림없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들은 그 곳에 모였고, 대략적인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설명을 통해 그 곳이 어디라는 것을 듣게 된 후에야, 우리는 이미 환상 세계에 들어와 있었음을 알았다. 그곳은 쉽게 말해, 한국이 아니었다. 물론 그 곳 역시 한국 내부에 있고, 한국인들이 살고, 생활하고, 발을 딛는 공간space이다. 하지만, 절대로 한국이라는 장소place는 될 수 없는 곳이었다. 그것이 한국인에게든, 필리핀인에게든. 그 곳에서 내가 기대했던 한국적인 삶의 모습은 그리 기대할 수 없었다.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던 우리들은 그 곳에서 이미 마이너중의 마이너가 되어 있었고, 필리핀인들은 메이저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장터에서는 필리핀 사람들이 필리핀 음식과 농산물, 장난감등을 팔고 있었다. 물론 영어도 아닌 필리핀 언어(타갈로그어라고 했다)로. 장터의 경우 내가 갔을 때는 많이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나에게는 충분히 신선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면 혜화성당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주일마다 타갈로그어로 미사를 드린다. 그 미사를 위해서 서울, 경기, 인천 등지에서 많은 필리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한다. 우리가 그 곳에 갔을 때, 언어는 필리핀어로 하되, 자막 등은 영어로도 표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서 자세히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길 건너편에는 우리은행이 있었다. 그곳은 다른 영업점과는 다르게, 주일도 영업을 한다. 아무래도 주일마다 오는 필리핀인들의 편의를 위해서였던 것 같다. 듣기로는, 그 곳 2층에는 필리핀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갖추어 놓았다고 한다. 송금 업무가 그 은행의 가장 주된 업무인 것 같았다. 
 질문지 문항을 받아오긴 했지만, 그들과 대화할 때 그것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대화의 폭이 좁아지게 되고, 그들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짧은 영어를 동원해서 이리저리 대화를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또 다른 신선함을 느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들도 사람이었다.” 라는 것. 그들을 만나기 이전에 필리핀인이란, 내겐 단지 숫자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저 필리핀에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온, 3D 노동자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대화는, 그것뿐만이 아님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첫 번째 만났던 사람은, 근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예상대로였다. 5년 정도를 일하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였고, 동료 문제가 가끔 힘들게 할 때가 있다고 했다. 비자 문제에 대해서는 강하게 “No” 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우리의 말실수였음을 깨닫게 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껄끄러운 문제였으리라. 그렇게 첫 번째 인터뷰는 무난하게 끝났다. 
 거기서 용기를 얻은 나는, 두 번째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두 번째 인터뷰는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라포Rapport 형성 자체를 실패했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거의 이루어지지를 못했다. 물론 대화를 나누긴 나누었지만, 우리가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혹은 전혀 의미 없는 대답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들은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여기 있는 것 자체가 ‘공식적으로는’ 불법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결국 약간은 의기소침한 상태로, 세 번째 인터뷰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했다. 미사가 드려지는 성당의 행정 직원이었다. 그들의 대답은 의외였다. 대충 요약하자면... “우리는 그들에게 단지 장소만 빌려 줄 뿐이다. 사실 노점상 하는 것도 별로 달갑지는 않은데, 통행에 방해가 되고 교인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즉 그들이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사실, 필자의 교회(개신교)에서도 그런 예배가 있는데, 그것을 별로 좋게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행정 하는 사람의 입장은 어딜 가나 동일한 것이다. 여기서 든 하나의 생각은 ‘과연 이것을 교회Ecclesia라 할 수 있는가.’ 이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디아스포라’ 라고 할 수 있는 모임을, 똑같이 귀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들이었건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결국 그들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했기에, 몇 사람의 인터뷰를 더 해야 했다. 그 다음으로 인터뷰한 것이, 그네에 앉아서 놀고 있던(진짜다) 한 청년이었다. 아무래도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지(혹은 그냥 사람구경하고 있는지) 그네타기에 열중한 표정이었다. 그와 몇 가지 문답을 나누긴 했지만 딱히 특이한 대답은 별로 없었다. 그냥 소득 반 정도를 보낸다든지, 하루 몇 시간을 일하고 얼마나 번다든지, 많이 벌 수 있어서 한국에 왔다든지 하는 것이었다. 다만 고향이 그리운가 하고 물었을 때, 쓰게 웃던 그 모습을 도저히 잊지 못한다. 곤란한 질문을 던질 때도 환하게 웃으며 대답해주던 그분이, 그때만은 얼굴에 그늘을 지우지 못하였나보다. 
 마지막으로 인터뷰했던 분이 가장 특이하긴 했다. 신혼여행으로 한국에 왔으며, 온 지 3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할 뿐이었다. 물론, 그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나중 문제겠지만... 어쩌면, 나의 경험 미숙으로 인해 그들에게 더 편안하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이 원인일 수 있었겠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느꼈던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웠던 것은, 그들은 최소한 대학 졸업 정도는 하고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대학까지 나와서, 여기서 하는 일은 공장일이라니... 어떤 면에서는 참 낭비라고 생각됐다. 어쩌면 70~80년대의 한국인들도 이러지 않았을까? 경제 개발기,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왔던 이들의 모습 말이다. 한인촌에 모여 살며, 조금이나마 서로의 ‘공기’를 느끼기 위해 모이려고 했던 그들. 나는 그것과 동일한 모습을 혜화동 로터리, 그 작지만 큰, ‘혜화동 필리핀 공동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각자 한국에 올 때, 가지고 왔던 꿈들은 모두 달랐을 것이다. 어떤 이는 가수로서 한국에 왔고, 어떤 이는 건축사로서, 교사로서...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 그들은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행정가’ 로서의 시선. 그들은 단지 부려먹기 좋은 값싼 노동력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며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원하던 일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일을 할 때쯤, 그들에게는 송환 명령이 떨어진다. 그렇게 그들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인’ 생활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 삶은 그들을 외로움으로 몰아넣고 닦달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단체 앞에, 개인으로서의 그들은 너무나 작은 존재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가톨릭’ 이라는 존재가 조금이나마 그들에게는 결속력으로써 작용했을 것이다. 종교란 참 무서운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는데다가, 사람들을 뭉치게 하는 데는 더욱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은 그 결속력이 더욱 강하다. 원칙적으로 가톨릭의 종파는 단 한가지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의 ‘집합체’ 로서 ‘권력power’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가톨릭교회는 이민관련 업무라든지, 송금업무, 심지어 의료봉사까지 담당함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히 담당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가톨릭교회의 응집력은 개신교 신자인 필자로서는 굉장히 부러운 부분이다. 
 조사를 마치고 오기 전에, 그 노점에서 필리핀 음료수 캔을 하나 사 마셨다. 무언가 거북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매력적이었다. 그 거북함이 좀 강했는지, 다 마시는 것은 힘들었다. 그렇게 길을 건너 건너편 롯데리아에 왔을 때도 필리핀인들은 많이 있었다. 심지어 우리와 인터뷰했던 그 ‘해맑은’ 청년도 와서 그의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그는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거기서 다른 학우들과 조사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을 그들은 꺼내 놓았다. 사실 그 병아리 요리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그 날의 답사는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성고등학교 입구를 지나자마자 느껴지는 그 ‘한국의’ 공기는, 다시 나를 낯설게 했다. 길에 한국인이 더 많다는 것. 노점상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판다는 것. 영어나 타갈로그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아니 한국어만이 들린다는 그 작은 사실. 그것들 하나하나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분명 10m 정도 밖에는 차이나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동성고 입구를 점이지대로 하여, 그 곳은 ‘다른 나라’ 나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풍경에 낯설음이 느껴지는 것, 1학기 때 배웠던 ‘인류학 개론’에서 그렇게도 중시하던 내용을, 한 학기동안 배웠던 것을, 나는 그 날 하루 몇 시간 만에 모두 느꼈다. 
 그리고 우린, 너무나 익숙한 것처럼, 지하철 카드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Posted by 미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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