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베트남전의 패배와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사회 혼란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시기였다. 그때, 절대적 가치의 붕괴를 모토로 삼은 ‘포스트모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레이건에 의한 ‘강한 미국’의 재정립이 추구되며 보수주의가 다시 떠오르기 시작할 시기였다. 당시의 시대상을 SF로 치환하여 잘 표현해낸 디스토피아 영화가 바로 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이다.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담고 있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절대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소화되지 않게 보여주고 넘어간 후, 남은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맡겨 버린다. 나는 이 영화에서 제시한 것들에 대해 해체해보고 분석하여 나의 언어로 설명해보려 한다. 
 처음부터 밤에서 시작하여 ELS로 보여주는 대지에는, 어두운 하늘로 향하는 굴뚝의 불꽃만이 보인다. 피라미드의 형태로 지어진 건물은 신에게 도전하는 바벨탑과도 같다. 이 건물의 안에서는 신에게 도전하는 것과 같은 ‘인간을 만드는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는 가타카에서 간접적인 오마쥬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가타카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성경 구절을 제시한다. 도시의 건물들은 이미 국적을 알 수 없다. 절대적 기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도시의 차이나타운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당시 이민자들에 대한 불안감이 영화에 시각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퇴폐적 분위기가 만개한 도시(게다가 거의 항상 비가 내린다, 느와르의 컨벤션은 비오는 거리)는 핸드헬드 기법과 로우키 조명에 의해 표현된다. 9분할 구도는 명확하게 지켜지지만, 일부러 그것을 깨기도 한다. 매우 많은 부분을 느와르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변명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 곳에 존재하는 블레이드 러너, 느와르에서 수사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벗어난 로봇들에 대한 처형 ― 영화상에서는 ‘폐기’라고 부른다 ―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과거 매카시즘의 신봉자였던 정보기관에 대한 오마쥬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철저하게 믿으며, 도망치는 무력한 여자에게 등 뒤에서 총을 쏘기까지 하는 임무수행. 하지만 피해자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에 어떠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는 ‘외계인=공산주의’ 의 공식을 가지고 있는 SF 호러 영화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겠다. 공산주의에 대한 ‘믿지 못함, 적대감, 두려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영화로 표출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많은 곳에서 기회와 모험의 땅에서 새시작하라는 광고판이 하늘을 떠다닌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과 관련지어지지 못한다. 높은 곳에서 그것이 빛나고 있으며 때때로 주인공들을 비추기도 하지만, 그것은 딴 동네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도 그러한 밝은 존재와는 어울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상식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블레이드 러너. 인간이 아닌 로봇들. 어두운 곳 ― 흡사 시궁창을 연상하게 하는 ― 곳에서 캐릭터들은 그것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에 큰 관심을 주지 않으며, 순간순간의 생존이 더 중요할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희망은 없다. 
 중간 중간 많은 소품을 활용하여 영화상의 의미를 강조하는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몽타주 기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만이 꾸었던 꿈을 다른 형사가 알아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것을 암시하는 것은 유니콘의 조그만 모형. 어떻게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오브제이지만, 줌인 기법을 활용하여 영상의 심도를 매우 얕게 한 화면에서의 그 모형은,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또한 로봇으로서 캐릭터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채워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강조한다. 하지만 오히려 진짜 인간들의 감정에 대해서는 어떠한 강조도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그들의 얼굴은 화면에서 표시되지 않기도 한다. 얼굴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도구이지만, 그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인간의 기계 같은 속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로봇들은 울고 웃지만, 정작 인간으로 나온 사람들은 절대로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얼굴이 화면에 나오는 장면이 충분히 있다고 할지라도. 이쯤 되면 인간과 로봇의 구별이 가지 않는다. 로봇이 인간의 감정을 더 풍부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SF영화는 많은 요소를 호러 영화에서 가져온다. 이 영화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누군가에게는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인형들이 주인공에게는 공포로 비춰지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총을 맞은 여자 로봇은 미친 듯이 발버둥 친다. 그 기괴함은 영화를 도저히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쫓기는 장면에서는 많은 장면을 하이 앵글로 처리하여 주인공의 무력감을 강조한다. 영화 초반부에 로우앵글로 주인공을 보여주고, 로봇들을 하이앵글로 보여주던 것과는 정반대이다. 사냥을 하던 존재가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것을 대사뿐만 아니라 영상 구도로써도 표현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제시하고, 너무 시대를 앞서나가서, ‘몰락한 영화’라 칭해지는 블레이드 러너. 이 영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영화의 배경은 2019년, 당시 영화가 제작될 시기로서는 상당히 먼 미래였다. 그리고 그 미래에서 그들은 ‘절망’을 보았다. 미래 어떠한 곳에서도 희망 따윈 없었다. 느와르의 특성을 강하게 비추는 이 영화는 가장 밝은 빛으로써 황혼의 태양빛을 준다.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것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나버린다. 영화는 끝이 났지만 많은 매듭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는 무엇보다도 필자의 역량의 한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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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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