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는 많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쓸까 아니면 그냥 쓰다가 졸리면 잘까 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다가온다. 그 상황에서 선택의 기준은, 언제나 자신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혹자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으며, 순수한 의미로서의 자유의지는 절대로 침범당하지 않는다고. 틀렸다.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은 분명히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심지어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 순간에도, 사회의 영향력은 분명히 존재한다. 만약 그대가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무엇을 먼저 하겠는가? 필자라면 먼저 도구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도구가 없는 곳에서의 인간(이것을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또한, 과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어떤 언어로’ 하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회의 영향력이다. 이렇듯, 개인은 분명히 사회의 영향력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회 안에서 주어지는 선택의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는가? 사실, 그렇긴 하다. 하지만, 사회가 우리에게 허락하는 경로는, 엄청나게 많다. 정말 이것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 것마저 사회는 우리에게 허락한다. 군중심리? 다른 사람이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길인데 선택해도 되느냐고? 그렇다면 그대가 ‘허락’하는 1인이 되면 그것을 따라오는 이는 많다. 여담이지만, 불행하게도 필자는 ‘허락’받는 2인자의 길을 걷고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을 한 일이라면,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고등학교란 정말 특이한 공간이었다. 그전까지 이루어지던 수많은 인간관계와는 다른, 정말 ‘인간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공간이었다.

 하지만, 난 그 곳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고등학교라는 넓은 세상으로 내어 쫓긴 나였다. 그러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어쩌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이 동아리였다. 운 좋게도, 알고 지내던 형이 ‘에클레시아’ 라는 기독교 동아리에 있어서 그 곳으로 가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그 때, 날 이끌어 준 것이 우리 ‘기독동아리 연합’ 이라는 소속감 이었을지도 모른다. 학교라는 공식적인 집단 안에서, 그러한 소속감은 나의 길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나 자신만의 틀 안에서만 살아가던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내었던 것이다. 

 에클레시아 안에서 나는 영상(미디어)팀에 있었다. 사진과 영상의 촬영에서부터, 편집까지를 담당했다. 예배 때 카메라를 잡고 있는 것은 거의 다 우리였다.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고, 그만 내려놓고 싶었던 적은 셀 수도 없었다. 성적이 떨어진다고 욕을 먹은 적도 있었고, 다칠 뻔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나는 성장했다.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생각의 크기와 신앙심까지, 얻은 것이 더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큰 선택은, 역시 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몇 년 여간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독서. 정말 우연하게 들은 것이지만, 누군가에게 “현재에 충실해라” 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추천했다. 그 때부터 나는 독서를 취미로 삼았다. 그냥 공부가 하기 싫었던 것도 있지만,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좋았다.

 그렇게 읽은 책이 일주일에 한권 정도. 그것도 고등학생 수준의 책이 아닌,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는 책들이었다(물론 그 책들이 교재로 쓰인다는 사실은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고등학교 2, 3학년 시절동안 약 80여권. 순수하게 재미로 읽었던 가벼운 책(판타지, 현대소설 등)을 합하면 약 4~5백 권 정도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고3 시절에는 공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열심을 다해서 했던 것 같다. 디데이 100일부터 보았던 영화가 약 70편에, 드라마가 약 20시즌 정도를 보았으니...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배경 지식이 되어서, 대화를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되지만, 당시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놈’ 으로 보았다. 상식적으로, 수능을 준비하는 고3 학생이라면 문제집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정말 그 해의 내 수능 점수는 ‘평소처럼’ 나왔다. 당시의 내 기준으로 본다면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은 ‘재수’였다. 우리 때의 수능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08학번의 수능이었다. 나와 같은 재수의 길을 선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특이했다. 나는 그 곳에서도, 꿈을 좇고 있었다. 나의 꿈 또한 조금 특이했다.

 나는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이 글이라서 쓰는 가식적인 말이 아니다. 난 진짜로 사회학이 하고 싶었다. 사회학의 길을 선택한 경로조차도 그리 평범하진 않았다. 사회학을 처음 생각했던 때는, 하나님(필자는 개신교도이다)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것은 고1 여름 수련회 때였다. 중 3때까지는 안티크리스천에 무신론자였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얼결에 지원하게 된 기독동아리에서 큰 이질감을 느꼈다. ‘내가 존재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자에게 이렇게 열심히 기도할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해 여름 수련회 때 저녁 부흥회 시간에, 저는 정말 우연히 맨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질감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 때 ‘나도 한번 따라 해 보자’라고 생각했고, 주님을 만났다. 처음 든 생각은 무엇보다도, 그 감격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게다가 믿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죽어가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 그들이 생각났다. 중국(그 수련회의 주제였다)과 아프리카. 그 곳에서 베토벤이, 셰익스피어가, 칸트가, 단지 그 곳에 태어났단 이유로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많은 가능성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때 가진 꿈은, ‘지원해 주자’가 아닌 ‘한 번 바꾸어 보자’였다. 그때부터 사회학을 하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재수생으로서의 할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사람이 하루에 잠자는 시간, 식사시간, 쉬는 시간을 빼고 남은 모든 시간을 공부에 ‘부을’ 수 있다는 것을 내 스스로 증명해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의외의 결과였다. 정말 내 하찮은 머리로는 이루어낼 수 없는 점수가 나왔다. 그 때 나는 사회학이 아닌 다른 길로 갔다. 아마 그 당시에는 내 꿈보다 돈을 더 쫓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전공이 ‘경제학’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공부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는 것. 학교를 선택하던 순간에는 몰랐지만, 대학에 와서 정말 ‘넓게’ 배우면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알게 해 주었던 내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고등학교 일을 도와주면서였다. 배재고등학교에서 하는 ‘아펜젤러의 두 번째 기도’ 라는 집회가 있다. 형식은 항상 바뀌지만, 그래도 매년 반복되는 ‘뮤지컬’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거기서 09년의 나는 뮤지컬을 도와주게 되었다. 

 어느 날, 동아리 OB(졸업생) 모임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갔다. 그래서 들은 말이 “너 뮤지컬 대본 좀 써라” 라는 말이었다. 사실, 적성에도 맞지 않던 공부에 지쳐가던 나는, 그 부탁(을 가장한 명령)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본 쓰기에서 끝나지 않고, 뮤지컬의 감독을 맡았다. 물론, 말이 감독이지 발성훈련, 호흡훈련, 연기지도, 안무 짜기, 당일 촬영과 보컬로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일들을 하면서, 나는 내 안에 있는 가능성들을 보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보았고, 내가 가졌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냈다. 

 그 때 선택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친 짓이 될지도 모르는 선택이, 다시 한 번 수능을 보는 것이었다. 정말, 절대로 합리적인 선택이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제학을 배운 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자의 경제학 성적은 C+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때의 상황에서는 아무도 내 생각에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고민했던 것은 배부른 현실과 배고픈 꿈 사이의 중간점을 찾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최소한 나의 기준에서, 사회학은 원래 전공하던 학문보다는 훨씬 ‘배고픈’ 학문이었다. 그때 내가 전공하려던 것이 경제학과 응용통계학의 복수 전공이었으니까, 아마 절대로 굶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학을 하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가 가장 먼저 듣는 말은 “그게 뭐야?”였다.

 그 때, 내가 사회학을 할 만한 용기를 가지게 해 주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그 분의 전공이 사회학이었고, 그래서 난 사회학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말했지만, 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잘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 분마저도 내가 다시 수능을 보겠다는 말에 그냥 ‘응원’ 만을 해 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 걱정스러운 말투로 “그래! 너라면 잘할 거야~!” 라고 하던 얼굴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나름 잘 해냈다는 것. 그래도 재수 때만큼의 성적을 유지해내는 것은 성공했다. 물론 거기서 끝은 아니었다. 그 중요한, 학교의 선택이 남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학교를 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나는 그런 ‘전도유망한’ 학교를 가서 ‘편하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이 글을 처음부터 보았던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힘들게’ 공부하는 길을 택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 나는 서강대학교에 진학했다. 더 좋아 보이는 길들이 있었다. 괜찮아 보이는 방법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공부다운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이 곳 로욜라 도서관에 있고, 이 글을 쓰면서 잠을 깨려고 별의별 스트레칭을 다 하고 있고, 이 글을 어느 정도 쓰다가 엎드려서 한숨 잘 계획이다. 그 후에 잠이 깨면 기지개를 펴고 다음 수업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선택 몇 가지가 있다. 지난 2월 한 달간 했던 일들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신입생들에게 2월은 바쁜 달이다. 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학교와 집을 오가고, OT와 입학식, 신입생환영회 등을 다니며 사람들을 알아가야 할 시기였다. 그리고 난 그때, 연애를 택했다. 정말 짧은 기간 동안의 연애였지만 그래도 나는 절대 그 일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수강신청이나, FA제도 같은 것은 혼자서도 배울 수 있었고(이건 진심이다, 어차피 학교별로 큰 차이는 없으니까) 주된 수강과목도 다른 1학년들과 겹치는 수업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나는 수강신청기간에 교회 수련회에 있었다. 나에게 교회 수련회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고1때의 여름 교회 수련회 때에 있었기 때문에, 한 번 한 번의 수련회가 나에겐 매우 소중하기 때문이다. 수강신청을 하는 시간대(내 기억이 맞는다면 저녁8시부터 12시였다)또한 예배시간과 정확하게 겹쳤다. 즉, 교양과목은 한 개도 신청하지 못했다. 내가 수강신청을 했던 시간은 다음날 수강정정기간이었다. 그래서 내가 최종적으로 신청한 과목은 이렇다. 사회학개론, 사회조사방법론, 사회학사, 정치학개론, 일반심리학, 인류학개론.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1학년이다. 위의 목록에서, 필자 혼자 1학년으로서 수업을 듣는 것이 3개정도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사실이다. 나의 인생 중, 2년의 황금기를 멀리 돌아오고 나서야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이기에 즐겁게 행할 수 있다. 난 그렇게 믿는다.

 지금 이 글은 며칠간 쓴 것이기에 문체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이 글을 주로 쓰는 공간은 로욜라 2관 4층 노트북 사용가능 테이블이고, 그 다음으로 많이 하는 곳은 우리 집 거실 바닥이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이다. 이 큼지막한 노트북을 꺼내는 것 자체가 속된말로 ‘쪽팔린’ 일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지하철에서 잠이 오지 않고, 읽을 만한 책을 챙겨오지 않았다면, 글이라도 쓰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한 번의 여담이지만, 사회학 한다는 놈이 이렇게 사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서야...

 지금까지 이 글을 쓰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정말 고등학교 이후의 나의 삶은 ‘내 멋대로 살았다’ 라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최근에 겪었던 많은 일들을 보면 말한다, “넌 왜 이리 인생에 굴곡이 많아?” 라고들. 내가 굴곡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는 꿈을 좇기에는 충분히 험난한 곳이다. 그런 험난한 곳을 살아가면서, 이 정도라면 그래도 잘 산 인생이 아닐까?

 사회를 살아가면서, 사회에 속해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추천하는 수많은 길들이 있다. 선택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추천하지 않는 몇 개의 길이 있다. 나는 그 중에, 한 번도 추천받지 못했던, 한 개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닌 여러 번. 그래서 나온 결과는, 항상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되었다. 내가 선택하지 못한 많은 길들이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현재에 만족한다. 그렇지 못한 삶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타카’ 라는 영화가 있다. 유전자로 인한 차별과, 그것을 극복하는 주인공을 그리는 영화이다. 지금도 가끔, 너무 하루하루가 힘들다 느껴지면 그 영화를 본다. 주인공은 “실패를 생각했다면 나는 너를 이길 수 없었어.” 라고 절규한다. 숨이 전혀 차지 않는 것처럼 달리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을 듯이 숨을 쉰다. 심장마비에 걸려 이미 죽었어야 하는 심장으로 그 누구보다도 오래 달린다. 그리고 주인공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보이는 경쟁들을 하나하나 승리해 나간다. 

 과연, 실패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실패라 규정지어야 하는가? 물론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회의 규범을 벗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많은 ‘틀’ 들이 과연 우리가 지켜나가야만 하는 것인가? 막스 베버는 말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성의 쇠장 iron cage 안에 갇혀 살아간다고. 난 지금 이성의 틀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생각하는 이성의 틀을 조금만 넓히는 것이다. 실패해도 좋다. 아니, 십중팔구는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 한둘은 성공하지 않는가? 그 한두 가지의 성공이,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루었지 않는가?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이, "세상에 필요 없는 건 영웅, 현자, 성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건 멍청이, 얼간이, 바보" 이다.

 니체는 ‘적극적 허무주의’ 에 대하여 말했다. 이성으로 인하여 절망적인 사회에서, 시도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번 더 해보라 말한다. 그가 비이성적인 사람인가? 그는 단지 그 절망적인 상황을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희망을 볼’ 뿐이다.

 지금의 사회는, 충분히 과거보다는 좋아진 사회이다. 충분히 열려 있는 사회이다. 충분히 원하는 꿈을 좇을 수 있는 사회이다. 과거에는 꿈을 좇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위대한 업적들은 과거에 많고 많게도 쌓여 있다. 그렇다면, 지금 그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무엇인가? 실패 없는 성공은 없다. 아니, 실패 그 자체가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실패했다고 다시 한 번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저 실패자일 뿐이다. 다시 한 번 시도할 때, 그는 ‘도전하는 자’ 이다. 그리고 나는, ‘도전하는 자’ 이다.
Posted by 미노하
 인간이 합리(合理)적 소비를 한다고 치자. 그러한 인간은 최저 비용 최대 만족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합리적 소비를 위해서는 시장의 모든 재화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또한 모든 재화가 단 1mm의 공간적 이동도 없이 매매가 가능해야만 진정으로 효율적인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이 한계가 바로 경제학에 지리학적 관점을 대입해야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현재까지 인간이 생산하는 재화는 대부분의 경우 내구도와 무게, 부피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그 문제가 해결되기 까진 지리학적 관점이 경제학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완전한 합리주의는 사고(思考)의 범위 내에 타인을 포함한다. 사람은 완전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지닐 수 없다. ‘사람’이라는 전제 내에 이미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개인만을 위한 합리성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사람이란 사회 안에서 자라나기 마련인데, 사회 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사고의 범위 내에 타인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이타(利他)적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생각해 낼 수 있는 비판만 해도 이렇게 두 가지가 나온다. 이 두 가지는 주로 경제학 보다는 경제학 외적인 학문에서 주장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타당한 비판이며,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생각해보자. 이 모든 것을 변수로 대입해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가? 실제로 경제학적 분석에서는(특히 미시경제학) 어떠한 모델을 선정할 때, 다른 조건들은 쳐내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극히 단순화되어 있는 모델은 현재 경제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환원론(還元論)적 관점이라고 한다. 환원론적 관점이란 ‘지극히 단순화되어 있는 모델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며, 이렇게 공식화되어 있는 모델을 통하여 또 다른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환원론적 관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모델들의 총합은 현재 사회의 모습이 된다고 본다. (기계론(機械論)적 관점과도 연결되지만 그것은 나중에 설명하겠음) 실제로도 많은 부분이 이러한 관점을 통하여 설명되고, 또 그것이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위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우선 첫째로, 경제학적 모델은 실제의 모습을 ‘반영’ 할 뿐이다. 경제학의 연구 방법론에서 모델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문제 단순화를 통하여, 연구의 편이성을 추구하는 것이 경제학이라는 뜻이다. 합리성을 추구하며 그러한 합리성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그러한 학문에서 합리적이지 않은(보편화가 불가능한)방법론으로 연구를 한다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
 둘째로, 경제학은 철학이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불변(不變)의 진리(眞理)’를 확립하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 경제학은 철학이 아닌 과학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속성이나 사회 일부분의 속성은 이론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전체적 합’으로서의 이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오류’나 ‘변수’를 통하여 더 이론의 정확성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다. 
Posted by 미노하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의 글 중에 이런 제목의 글이 있었다. “한국은 아직도 인터넷 강국(强國)인가?”
 언론(言論)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을 IT 강국이라 칭하고, 누구나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실상(實狀)은 어떠한가?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닐 수도 있잖아’ 라는 생각.

 ADSL 등장 이후 국내 초고속인터넷 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초창기 ADSL은 속도가 8Mbps 수준으로 전화 모뎀을 연결한 인터넷 속도인 128kbps 보다 63배 정도 빨랐다. 최근 들어 초고속인터넷은 100Mbps의 속도를 자랑하는 댁내 광가입자망(FTTH)으로 발전했다.
[이데일리]

 물론 여기까지는 좋다. 충분한 기술적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고, 그것이 일반인에게 충분히 보급(普及)된 상태이다. 하지만 꼭 이것이 안정된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의 정보기술(IT) 강국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이 경제 발전과 국가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네트워크 준비지수(NRI) 순위에서 한국이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인터넷 이용률 등 양적인 면에서는 상위권을 지키고 있지만 각종 규제 등에 묶여 정작 IT가 경제 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경제]

 전문가들은 정부의 IT정책 부재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라고 지적한다. IT 정책을 총괄하던 정보통신부를 이어받은 방송통신위원회가 IT 정책을 제대로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IT 관련 예산도 푸대접받고 있다. 최근 정부는 28조9000억원에 이르는 추경 예산안을 확정하면서 IT · 소프트웨어(SW) 뉴딜 부문 예산을 당초 5000억원에서 3361억원으로 크게 삭감했다. 서승모 벤처산업협회장은 "발전 속도와 변화가 빠른 IT는 국가 차원의 시나리오를 갖고 정부가 꾸준히 육성해야 하는데 이를 전담할 부처는커녕 IT 벤처기업의 애로 사항을 들어 주는 곳조차 없다"며 "과감한 규제 완화는 물론 IT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경제]

 10대들이 사이버 폭력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선 연예인 등 유명인의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나 '악성 댓글'에 대한 관심이 반짝했다가 무심해지곤 했다"며 "실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인터넷에서 댓글이나 모욕성 글로 상처를 받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는지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인터넷 강국이 되려면, 그것을 실제로 활용하여 생활(生活)과 산업(産業)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또한 그에 대한 충분한 정책(政策)적 배려와 지원을 통한 그 산업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만큼 인터넷 사용자의 정신적 성숙(네티켓 같은)도 중요하다.
 하지만 위의 사실들이 말을 해 주듯, 현재 우리나라 IT 산업의 상황은 정말 ‘모래 위에 지은 성’ 과도 같다. 현재 한국의 IT 개발 정책은, 발전에 대한 명확한 방법론(方法論)조차 제시되지 않은 채, 표류(漂流)하는 배의 상황이다. 게다가 정책의 중요성(重要性)마저 속된 말로 ‘땅파기 정책’ 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 난 상황이다. IT 강국이 아닌 IT ‘소비’ 강국이라는 말도 흘러 다니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언제 우리가 IT 강국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인프라에 대한 무계획(無計劃)적 투자나 지원 보다는, 그 인프라를 사용해서 소비함과 동시에 재생산(再生産)할만한 콘텐츠의 확충(擴充)이 필요하다. 또한,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의 인터넷 윤리(倫理) 교육의 확충을 통해, 인터넷 사용자의 정신적 성숙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저작권(著作權)의 확립과 유통구조(流通構造) 개선 등을 통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성장을 꾀하여야 한다. 
Posted by 미노하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용돈이나 벌어 볼까 해서 좀 조사를 해봤다. 그런데 역시나, 하늘의 별따기인 아르바이트 구하기다. 경제가 어렵다 어쩌다 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까지도 많이 줄어 버렸다. 그러다 눈에 띈 단어가 있다. ‘잡셰어링’
 최근 뉴스 같은 데서 많이 들리기도 해서 관심이 가고 하니 한번 조사해 보았다.

 잡셰어링 job­sharing  명사  <신어, 2004년> 
[명사]<경제> 노동 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에 일자리를 더 늘리는 일.
근무 시간 단축, 잡셰어링, 실업 수당 제공 등 사회 민주주의가 전통적으로 주장해 온 고용 대책 역시 미래 사회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경제. 1998. 11. 26.≫
 - 네이버 국어사전

 생각해 보니 아마 1인당 노동 시간을 줄여 임금도 같이 깎고 그걸 ‘공유’ 하자는 의미 같다. 취지는 좋다. 현재 같은 경제 불황의 시기에 제시할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뒤에 두 줄. 국어사전에 부정적인 의견이 실려 있을 정도면, 대체 어떤 정책인가 싶었다. 혹시나 정보가 있을까 해서 좀 더 조사를 해 보았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31일 임원 상여금 반납분과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으로 재원을 마련해 인턴사원 10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임원은 상여금의 15%를 자진 반납하고 신입사원은 초임의 10%를 깎기로 했다.
 인턴사원 근무기간은 5월부터 3개월이며 본사와 공장, 지역본부에서 실무경험을 익히게 된다. 인턴사원에겐 실습비와 중식비를 제공하고 국민연금 등 4대 보험 가입 혜택도 주어진다.
- 매일경제

 역시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과연, 고용이란 것이 그렇게 유기적으로 빨리 움직여 주는가? 업무나 임금의 조절 여부는 분명히 개인의 이익에 관계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관료 조직의 고질적인 구조적 한계와 마주치게 된다. 일단 기업이란 것 자체는 분명히 관료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잡셰어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여력을 지닌 회사라면 충분히 거대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유동적인 인턴 운용은 이미 먼 나라 이야기가 된다.

 정부의 독려로 인턴을 뽑기는 했지만 막상 맡길 일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달 초부터 모 은행에서 인턴을 시작한 이모씨는 “한 달째 서류를 발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회사 측 배려(?)로 구석진 곳에서 영어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업무의 핵심이 돈과 개인정보인데 이런 일을 어떻게 인턴에게 맡길 수 있느냐”며 “인턴을 놀린다고 또 욕을 먹기 때문에 담당부서에서는 프로그램 만드느라 곤욕을 치른다”고 전했다.
- 세계일보

 결국 위와 같은 경우가 생기게 된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는 공기업 33곳을 대상으로 올해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 신입과 경력을 포함한 정규직 채용 규모는 579명으로 전년(1312명)보다 55.9%(733명)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고 26일 발표했다. 채용 예정 인원은 신입이 529명,경력이 50명이다.
 특히 조사 대상 공기업 33곳 중 7곳만이 정규직을 채용하겠다고 밝혀 구직자들은 대부분 취업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9개사는 정규직 채용계획이 아예 없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아직 채용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경제

 올해 은행권 임금 및 단체협상에서 사측 대표인 은행연합회가 일자리 나누기 재원 마련을 위해 대졸 초임을 20% 삭감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로 했다. 은행연합회는 16일 전국 금융산업노조와 중앙 노사위원회를 열어 이같이 신입 행원의 초임을 삭감하는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금융노조는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 분담에는 공감하면서도 임금 삭감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협상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 한국경제

 결국 이렇게 착취의 체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자들이 약자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밖에는 되지 못한다. 정말로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면, 정책의 결과에 대한 공평한 기준이 필요하다. 현재의 잡셰어링은 친기업적인 정책의 한계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미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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