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합리(合理)적 소비를 한다고 치자. 그러한 인간은 최저 비용 최대 만족을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합리적 소비를 위해서는 시장의 모든 재화를 비교해 보아야 한다. 또한 모든 재화가 단 1mm의 공간적 이동도 없이 매매가 가능해야만 진정으로 효율적인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이 한계가 바로 경제학에 지리학적 관점을 대입해야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현재까지 인간이 생산하는 재화는 대부분의 경우 내구도와 무게, 부피 등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그 문제가 해결되기 까진 지리학적 관점이 경제학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완전한 합리주의는 사고(思考)의 범위 내에 타인을 포함한다. 사람은 완전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를 지닐 수 없다. ‘사람’이라는 전제 내에 이미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개인만을 위한 합리성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사람이란 사회 안에서 자라나기 마련인데, 사회 안에서 자라난 사람이 사고의 범위 내에 타인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사람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이타(利他)적일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생각해 낼 수 있는 비판만 해도 이렇게 두 가지가 나온다. 이 두 가지는 주로 경제학 보다는 경제학 외적인 학문에서 주장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타당한 비판이며,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생각해보자. 이 모든 것을 변수로 대입해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가? 실제로 경제학적 분석에서는(특히 미시경제학) 어떠한 모델을 선정할 때, 다른 조건들은 쳐내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극히 단순화되어 있는 모델은 현재 경제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 환원론(還元論)적 관점이라고 한다. 환원론적 관점이란 ‘지극히 단순화되어 있는 모델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며, 이렇게 공식화되어 있는 모델을 통하여 또 다른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환원론적 관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러한 모델들의 총합은 현재 사회의 모습이 된다고 본다. (기계론(機械論)적 관점과도 연결되지만 그것은 나중에 설명하겠음) 실제로도 많은 부분이 이러한 관점을 통하여 설명되고, 또 그것이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위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우선 첫째로, 경제학적 모델은 실제의 모습을 ‘반영’ 할 뿐이다. 경제학의 연구 방법론에서 모델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문제 단순화를 통하여, 연구의 편이성을 추구하는 것이 경제학이라는 뜻이다. 합리성을 추구하며 그러한 합리성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 경제학이다. 그러한 학문에서 합리적이지 않은(보편화가 불가능한)방법론으로 연구를 한다는 것은 논리가 맞지 않는다.
 둘째로, 경제학은 철학이 아니다. 경제학에서는 ‘불변(不變)의 진리(眞理)’를 확립하기 위해 연구하지 않는다. 경제학은 철학이 아닌 과학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속성이나 사회 일부분의 속성은 이론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전체적 합’으로서의 이론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오류’나 ‘변수’를 통하여 더 이론의 정확성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다. 
Posted by 미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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