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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31 브레히트, 제4의 벽을 무너뜨리다

고등학교 후배가 페북에 브레히트 글을 올려서 갑자기 쓰는 글.

브레히트는 부조리극으로 유명하다. 부조리극이란, 부조리한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이후에, 이것을 현실에 빗대어 '현실도 이와 같이 부조리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연극을 뜻한다. 거기에 더해서, 연극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제4의 벽(관객과 연기자 사이의 가상의 벽)을 무너뜨리고, 관객을 더 이상 '훔쳐보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 위에 있는 우스꽝스러운 가상-현실에 참여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자면, 도저히 연극 내부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제시한 이후에, 갑자기 연기를 멈추고 관객을 향해 묻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거기 뒤에 코트가 멋진 신사분?“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연극에 대해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우리의 울분을 카타르시스화 하여 배설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할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브레히트 연극의 대표작은 <서푼짜리 오페라>가 될 것이다. 살인마 조폭은 사실, 경찰과 오랜 친구관계이고, 사기를 치고도 여왕폐하의 사자(고의적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의해 구원받아, 오히려 포상을 받고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합니다...식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 아냐?"라는 것을. 그래, 그래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부조리하다는 것을, 관객들은 모두 알고 있다. 악행을 범한 이들은 오히려 권력과의 야합에 의해 보호받고, 그나마 법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처벌하고자 하면, 더 큰 권력에 의해, 처벌하고자 한 약자가 처벌당한다. 그렇기에 관객을 향해 한 마디 던진다.

 

이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겨우 이정도로 끝나서는, 브레히트의 놀라운 연출력을 모두 드러낼 수 없다. 그의 위대함은, ‘빈 시공간의 활용능력에서 드러난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슬픔, 혹은 분노 등을 연기할 때 사람들은 보통, 괴성을 지르거나, 울부짖거나, 이것저것 집어던지며 시끄럽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격한 감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정 반대의 길을 택했다. 브레히트의 유명한 부조리극 중에 하나인 <억척어멈>을 보면, 자신의 아이들을 먹여 살릴 생계수단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아이를 잃는 상황에 처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뇌물을 줄 돈이 없어, 아이가 총살당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봐야 하는 어머니.
그 장면에서 억척어멈은, 소리를 지른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울부짖고 괴성을 지르고 하늘을 향해, 바닥을 향해,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분노하고 슬퍼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그렇게 생긴 슬픔의 빈 자리, 관객들이 자신의 슬픔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렇게 극장 전체를 가득 채운 슬픔은, 외마디 비명으로 관객들의 가슴에 새겨진다.

 

?”

Posted by 미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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